전쟁·분쟁1876년 – 1878년

쭤쭝탕의 신장 수복

다른 이름: 신장 재정복, 좌종당의 서정

1876–1878년 쭤쭝탕이 이끈 청군이 야쿠브 벡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장을 되찾았다. 러시아가 차지했던 이리는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대부분 돌려받았다.

1860년대 서북의 무슬림 봉기로 청의 신장 지배가 무너지자, 코칸트 출신의 야쿠브 벡이 1865년 카슈가르를 차지하고 타림 분지와 우루무치까지 다스렸다. 러시아는 혼란을 틈타 1871년 이리 지방을 점령했다.

1874년 일본의 타이완 출병 뒤 청 조정에서는 바다를 지키는 해방(리훙장)과 서북 변경을 지키는 새방(쭤쭝탕) 가운데 무엇이 먼저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조정은 둘 다 택했고, 쭤쭝탕은 1876년 간쑤에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그해 우루무치를 되찾았다. 1877년 야쿠브 벡이 죽고 정권이 무너지자, 청군은 그해 말 카슈가르에 들어갔다.

러시아와의 협상 끝에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이리의 대부분을 돌려받았고, 청은 1884년 이 땅에 신장성을 두었다.

지도에서 보기

1876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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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승전국 — 광서제
관련 장소
카슈가르

관련 인물

  • 쭤쭝탕1812년 – 1885년

    지휘관 · 청 말의 한인 관료·장군. 태평천국 진압에 공을 세우고 푸저우 선정국을 세웠으며, 1876–1878년 야쿠브 벡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장을 되찾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74년 일본의 타이완 출병

이 사건이 든 테마

  • 청의 마지막 반세기1861년 – 1901년

    양무운동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기술을 배우려던 청이 프랑스와 일본에 거듭 지고, 열강에 땅을 쪼개 주고,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을 떠안은 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