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역사1861년 – 1901년20건

청의 마지막 반세기

양무운동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기술을 배우려던 청이 프랑스와 일본에 거듭 지고, 열강에 땅을 쪼개 주고,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을 떠안은 40년

「중국 — 왕과 황제들의 케이크」. 열강이 중국을 나누는 풍자화, 『르 프티 주르날』 1898년 1월
「중국 — 왕과 황제들의 케이크」. 열강이 중국을 나누는 풍자화, 『르 프티 주르날』 1898년 1월

Henri Meyer · Public domain · 원본

지도에서 보기

지도로 보는 테마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테마의 사건 20건

  1. 1861년 함풍제가 러허에서 죽자 여섯 살 동치제를 대신해 숙순 등 여덟 대신이 정사를 맡았다. 11월 두 황태후(동태후·서태후)가 공친왕과 손잡고 이들을 몰아내고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2. 1861년 – 1895년양무운동

    태평천국을 진압한 한인 관료들이 "중체서용"을 내걸고 서양의 무기·기술을 들여와 군수 공장·조선소·근대 기업을 세웠다. 청프·청일 전쟁에 지며 한계가 드러났다.

  3. 1865년 쩡궈판과 리훙장이 상하이에 근대 군수 공장 강남제조총국을 세웠다. 총과 대포, 증기선을 만들고 번역관에서 서양의 과학·기술 책을 옮겼다.

  4. 류큐 어민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살해된 일을 구실로 일본이 타이완 남부에 군대를 보냈다. 메이지 정부의 첫 해외 출병이었다.

  5. 1876년 – 1878년쭤쭝탕의 신장 수복

    1876–1878년 쭤쭝탕이 이끈 청군이 야쿠브 벡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장을 되찾았다. 러시아가 차지했던 이리는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대부분 돌려받았다.

  6. 일본이 청과 사쓰마에 함께 속해 있던 류큐 왕국을 없애고 오키나와현을 두었다. 청 중심 조공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신호였다.

  7.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8. 임오군란 뒤 청이 조선을 속방으로 명시한 무역 장정을 맺었다. 청 상인이 서울에 가게를 열고 내륙에서도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

  9. 1884년 8월 23일 쿠르베가 이끈 프랑스 극동 함대가 푸저우 마웨이에 정박한 청의 푸젠 함대를 기습해 한 시간도 안 되어 거의 모두 침몰시키고, 푸저우 선정국을 포격했다.

  10. 1884년 – 1885년청프 전쟁

    베트남의 종주권을 두고 청과 프랑스가 싸웠다. 청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잃었고, 그사이 조선에서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11. 갑신정변 뒤 청의 리훙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미리 알리기로 약속했다.

  12. 1888년 리훙장이 길러 온 북양 함대가 정식 해군이 되었다. 독일에서 사 온 철갑함 딩위안·전위안을 앞세워 아시아 최강으로 꼽혔으나, 그 뒤로는 새 군함을 거의 사지 못했다.

  13.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일어났다.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14. 1894년 – 1895년청일 전쟁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싸웠다. 풍도·성환·평양·황해에서 이긴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의 조선 종주권을 끊고 타이완을 얻었다.

  15. 1894년 9월 17일 압록강 어귀 앞바다에서 일본 연합 함대가 북양 함대와 싸워 군함 다섯 척을 가라앉혔다. 일본은 한 척도 잃지 않고 황해의 제해권을 쥐었다.

  16. 청일 전쟁을 끝낸 조약으로 일본은 타이완과 거액의 배상금을 얻었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어 열강이 청의 영토를 앞다투어 조차했다.

  17. 청일 전쟁 뒤 1897–1898년 독일이 자오저우만, 러시아가 뤼순·다롄, 영국이 웨이하이웨이와 주룽 신계, 프랑스가 광저우만을 조차하고 저마다 세력권을 그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과분(瓜分)」, 참외를 쪼개듯 나눈다고 불렀다.

  18. 캉유웨이·량치차오가 광서제를 움직여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입헌 군주제를 향한 개혁을 폈으나, 서태후의 무술정변으로 100여 일 만에 끝났다.

  19. "부청멸양"을 내건 의화단이 교회와 철도를 공격하고 베이징의 공사관을 에워쌌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고, 청은 신축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였다.

  20. 1901년 9월 7일 청이 11개국과 맺은 조약. 은 4억 5천만 냥을 39년에 걸쳐 갚기로 해 이자까지 9억 8천만 냥이 넘었고, 베이징 공사관 구역과 베이징–바다 사이에 외국 군대를 두게 했다.

주요 인물

  • 리훙장1823년 – 1901년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 서태후1835년 – 1908년

    함풍제의 비, 동치제의 어머니. 수렴청정으로 반세기 가까이 청의 실권을 쥐었고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쩡궈판1811년 – 1872년

    한인 관료. 향용인 상군을 길러 태평천국을 진압하고, 양무운동을 시작했다

  • 쭤쭝탕1812년 – 1885년

    청 말의 한인 관료·장군. 태평천국 진압에 공을 세우고 푸저우 선정국을 세웠으며, 1876–1878년 야쿠브 벡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장을 되찾았다

  • 이토 히로부미1841년 – 1909년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 딩루창1836년 – 1895년

    북양 함대의 제독. 1894년 황해 해전에서 일본 함대와 싸웠고, 1895년 웨이하이웨이에서 에워싸이자 항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공친왕 혁흔1833년 – 1898년

    도광제의 아들, 함풍제의 아우. 1860년 피란한 황제 대신 베이징에 남아 베이징 조약을 맺었고, 이듬해 총리아문을 이끌며 양무운동을 폈다

  • 함풍제 (청 문종)1831년 – 1861년

    청의 제9대 황제(재위 1850–1861). 태평천국과 제2차 아편 전쟁을 겪고, 1860년 영·프 연합군이 베이징에 다가오자 러허로 피란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 오쿠보 도시미치1830년 – 1878년

    사쓰마 출신으로 메이지 정부를 이끈 정치가. 폐번치현과 식산흥업을 밀었고, 정한론에 반대했다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

  • 명성황후1851년 – 1895년

    고종의 왕비. 일본 세력을 견제하다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