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187년 10월 2일

살라딘의 예루살렘 탈환

하틴 전투 석 달 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포위해 항복을 받았다. 1099년과 달리 몸값을 받고 주민을 내보냈다.

살라딘의 예루살렘 점령(1187) — 루아세 리에데, 다비드 오베르 『연대기 요약』 사본 삽화, 1462년, 아르스날 도서관
살라딘의 예루살렘 점령(1187) — 루아세 리에데, 다비드 오베르 『연대기 요약』 사본 삽화, 1462년, 아르스날 도서관

Loyset Liédet · Public domain · 원본

하틴 전투로 왕국의 주력군이 사라지자 살라딘은 아크레·야파 등 해안 도시를 차례로 손에 넣은 뒤 1187년 9월 20일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성안에는 싸울 기사가 거의 없었고, 귀족 이벨린의 발리앙이 피난민과 시민을 무장시켜 성벽을 지켰다.

성벽 일부가 무너지자 발리앙은 성안의 성소를 부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버티며 협상했다. 살라딘은 남자 10디나르, 여자 5디나르, 아이 1디나르의 몸값을 받고 주민을 내보내기로 했고, 10월 2일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몸값을 내지 못한 많은 사람은 노예가 되었지만, 살라딘과 동생 알아딜이 일부를 그냥 풀어 주기도 했다.

1099년 십자군의 학살과 대비되는 이 처분으로 살라딘은 유럽에서도 너그러운 기사의 본보기로 이름을 남겼다. 바위의 돔과 알아크사 모스크는 다시 이슬람 성소가 되었고, 예루살렘을 잃었다는 소식은 제3차 십자군을 불렀다.

지도에서 보기

118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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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아이유브 왕조 · 정복국
예루살렘 왕국 · 피정복국
관련 장소
예루살렘

관련 인물

  • 살라딘1137년 – 1193년

    지휘관 · 아이유브 왕조를 세운 술탄. 이집트와 시리아를 하나로 묶고 1187년 하틴에서 이겨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147년 제2차 십자군
이후 사건
1189년 제3차 십자군

관련 작품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십자군 전쟁1095년 – 1291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아크레 함락까지 — 성지를 두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200년 동안 맞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