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189년 – 1192년 9월 2일

제3차 십자군

다른 이름: 사자왕 십자군

예루살렘을 잃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가 원정했다. 아크레를 되찾았으나 예루살렘은 얻지 못했다.

아르수프 전투의 리처드 1세와 살라딘 — 귀스타브 도레의 십자군 판화, 19세기
아르수프 전투의 리처드 1세와 살라딘 — 귀스타브 도레의 십자군 판화, 19세기

Gustave Doré · Public domain · 원본

"왕들의 십자군"이라 불린다. 프리드리히 1세는 육로로 오다 1190년 소아시아의 강에서 빠져 죽었고 독일군은 대부분 흩어졌다. 바닷길로 온 필리프 2세와 리처드 1세는 1191년 아크레를 함락했으나, 필리프는 곧 돌아갔다.

리처드는 아르수프에서 살라딘을 이기고 두 번 예루살렘 가까이 갔지만 성을 지킬 수 없다고 보고 물러났다. 1192년 야파 조약으로 해안 지대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은 살라딘이 갖되 그리스도교 순례자의 출입을 허락하기로 했다.

지도에서 보기

118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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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잉글랜드 · 침공국
프랑스 · 침공국
신성 로마 제국 · 침공국
아이유브 왕조 · 교전국
관련 장소
아크레, 예루살렘

관련 인물

  • 리처드 1세1157년 – 1199년

    지휘관 · 잉글랜드 왕(재위 1189–1199), "사자심왕". 제3차 십자군에서 아크레를 되찾고 살라딘과 야파 조약을 맺었다

  • 필리프 2세1165년 – 1223년

    지휘관 · 프랑스 왕(재위 1180–1223), "존엄왕". 제3차 십자군에 나섰다가 아크레 함락 뒤 먼저 돌아가 잉글랜드의 프랑스 땅을 빼앗았다

  • 프리드리히 1세1122년 – 1190년

    지휘관 · 신성 로마 황제(재위 1155–1190), "바르바로사(붉은 수염)". 제3차 십자군을 이끌고 가다 소아시아의 살레프강에서 빠져 죽었다

  • 살라딘1137년 – 1193년

    지휘관 · 아이유브 왕조를 세운 술탄. 이집트와 시리아를 하나로 묶고 1187년 하틴에서 이겨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하위 사건 1건

  1. 1189년 – 1191년아크레 공방전

    2년 가까이 이어진 포위 끝에 리처드 1세와 필리프 2세가 도착하자 아크레가 항복했다. 아크레는 이후 예루살렘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십자군 전쟁1095년 – 1291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아크레 함락까지 — 성지를 두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200년 동안 맞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