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아크레 함락까지 — 성지를 두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200년 동안 맞선 전쟁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아크레 함락까지 — 성지를 두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200년 동안 맞선 전쟁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에게서 되찾자고 호소했다. 십자군 운동의 시작이다.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원정.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제1차 십자군이 레반트에 에데사 백국·안티오키아 공국·예루살렘 왕국·트리폴리 백국을 세웠다. 이들은 약 200년 동안 이어졌다.
제1차 십자군이 한 달 남짓 포위한 끝에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성안의 무슬림과 유대인 주민을 크게 학살했다.
모술의 장기가 에데사를 함락해 첫 십자군 국가가 무너졌다. 이 소식이 제2차 십자군을 불렀다.
에데사 함락 뒤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독일 왕 콘라트 3세가 원정했으나, 다마스쿠스 포위에 실패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살라딘이 갈릴리의 하틴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주력군을 무찌르고 기 드 뤼지냥 왕을 사로잡았다.
하틴 전투 석 달 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포위해 항복을 받았다. 1099년과 달리 몸값을 받고 주민을 내보냈다.
예루살렘을 잃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가 원정했다. 아크레를 되찾았으나 예루살렘은 얻지 못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포위 끝에 리처드 1세와 필리프 2세가 도착하자 아크레가 항복했다. 아크레는 이후 예루살렘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집트로 가려던 십자군이 베네치아에 진 빚 때문에 방향을 틀어 같은 그리스도교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약탈하고 라틴 제국을 세웠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소년과 가난한 사람들이 성지로 가겠다며 무리 지어 길을 나섰다. 대부분 흩어지거나 굶주렸고, 노예로 팔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십자군이 이집트를 먼저 치려고 다미에타를 빼앗았으나, 카이로로 나아가다 나일강 홍수에 갇혀 다미에타를 내주고 물러났다.
파문당한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싸우지 않고 이집트 술탄 알카밀과 협상해 예루살렘을 10년 기한으로 넘겨받았다.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이집트를 쳐 다미에타를 빼앗았으나 만수라에서 크게 지고 포로가 되었다. 몸값을 내고 풀려났다.
루이 9세가 다시 원정에 나서 북아프리카의 튀니스를 쳤으나, 진영에 돌림병이 돌아 왕이 죽고 원정이 끝났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알아슈라프 할릴이 십자군의 마지막 거점 아크레를 함락했다. 레반트의 십자군 국가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