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다른 이름: 프리아모스의 보물, 히사를리크 발굴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1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히사를리크 언덕을 파서 호메로스의 트로이를 찾았다고 알렸다. 1873년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이름 붙인 금붙이를 찾아냈으나, 이는 트로이 전쟁보다 1000년 넘게 이른 층의 것이었다.

Elizabeth Simpson · Public domain · 원본
어려서부터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었다고 회고한 하인리히 슐리만은 무역으로 큰돈을 번 뒤 고고학에 뛰어들었다. 히사를리크 언덕이 트로이라는 생각은 언덕 일부를 가진 영국인 프랭크 캘버트가 먼저 했고 1860년대에 시굴도 했는데, 슐리만은 그의 권유를 받아 1871년부터 1873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얻어 대규모로 발굴했다(1878 – 1879, 1882, 1890년에도 팠다). 그는 언덕을 남북으로 가르는 큰 도랑을 파 내려가 여러 층의 도시를 찾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위층, 곧 정작 트로이 전쟁 무렵의 층을 많이 허물었다.
1873년 5월 말 그는 금관·귀걸이·잔 등의 금붙이를 찾아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이름 붙이고, 오스만 제국 몰래 그리스로 빼돌렸다. 아내 소피아가 이 보석을 걸친 사진이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보물이 나온 트로이 II 층은 기원전 2500 – 2300년 무렵으로 트로이 전쟁보다 1000년 넘게 이르다. 보물은 1881년 베를린에 기증되었다가 1945년 소련군이 가져갔고, 1990년대에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 있음이 드러났다.
발굴 방식과 보고의 정확성은 비판받지만, 그의 발굴은 호메로스의 트로이를 고고학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후 빌헬름 되르펠트, 칼 블레건, 만프레트 코르프만 등이 발굴을 이어 층의 연대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