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7년 11월 – 1899년
열강의 중국 조차 경쟁
다른 이름: 과분, 중국 분할
청일 전쟁 뒤 1897–1898년 독일이 자오저우만, 러시아가 뤼순·다롄, 영국이 웨이하이웨이와 주룽 신계, 프랑스가 광저우만을 조차하고 저마다 세력권을 그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과분(瓜分)」, 참외를 쪼개듯 나눈다고 불렀다.

Henri Meyer · Public domain · 원본
청이 일본에 지자 열강은 청을 마음대로 나눌 수 있는 상대로 보기 시작했다. 1897년 11월 산둥에서 독일 선교사 두 사람이 살해되자 독일은 자오저우만을 점령했고, 이듬해 99년 동안 조차해 칭다오를 세웠다.
1898년 러시아는 삼국 간섭으로 일본에게서 돌려받게 한 랴오둥반도 끝의 뤼순과 다롄을 조차했다. 영국은 웨이하이웨이와 홍콩 주룽반도의 신계를, 프랑스는 광저우만을 조차했다. 열강은 철도와 광산의 권리를 다투며 러시아는 만주, 독일은 산둥, 영국은 장강 유역, 프랑스는 남쪽 윈난·광시, 일본은 푸젠을 세력권으로 삼았다.
뒤늦게 뛰어든 미국은 1899년 국무장관 헤이의 이름으로 「문호 개방」을 내세워 모든 나라가 중국에서 똑같이 장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라가 쪼개질 위기 앞에서 중국 안에서는 변법 개혁의 목소리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