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1493년 9월 25일 – 1496년 6월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

콜럼버스가 배 17척과 1,200여 명을 이끌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히스파니올라섬에 정착지 라 이사벨라를 세웠다. 금을 바치게 하고 원주민을 노예로 보내면서 타이노족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라 이사벨라 유적 — 1494년 콜럼버스가 세운 정착 도시, 도미니카 공화국
라 이사벨라 유적 — 1494년 콜럼버스가 세운 정착 도시, 도미니카 공화국

Mariordo (Mario Roberto Durán Ortiz) · CC BY-SA 4.0 · 원본

1493년 9월 카디스를 떠난 두 번째 항해는 탐험대가 아니라 식민 사업이었다. 배 17척에 병사·농부·장인·사제와 말·소·돼지, 사탕수수와 밀 씨앗이 실렸다. 콜럼버스는 소앤틸리스 제도(도미니카·과들루프)와 푸에르토리코를 거쳐 히스파니올라에 이르렀고, 라 나비다드가 무너진 것을 확인한 뒤 1494년 1월 북쪽 해안에 정착 도시 라 이사벨라를 세웠다. 이어 쿠바 남쪽과 자메이카를 탐사하며 쿠바가 아시아 대륙이라는 맹세를 선원들에게 받았다.

금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자 콜럼버스는 14세 이상의 타이노족에게 석 달마다 일정한 금을 바치게 했고, 맞서는 이들을 무력으로 눌렀다. 1495년에는 500여 명을 노예로 에스파냐에 보냈다 — 이사벨 여왕은 이를 꺼려 일부를 돌려보내게 했다. 강제 노동과 굶주림, 그리고 유럽에서 들어온 병으로 수십만이던 히스파니올라의 타이노족은 30년 사이 거의 사라졌다. 콜럼버스는 정착민들의 불만과 왕실의 의심에 맞서려 1496년 에스파냐로 돌아갔다.

지도에서 보기

149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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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에스파냐
관련 장소
라 이사벨라, 라 나비다드

관련 인물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년 – 1506년

    지휘관 · 제노바 출신의 항해가. 에스파냐의 후원으로 1492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닿았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항해 시대1415년 – 1600년

    세우타 점령부터 마닐라 갤리온까지 — 유럽의 배가 대양을 건너 세계를 하나의 바닷길로 이은 2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