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 전투와 에도 막부 성립
다른 이름: 세키가하라 전투, 도쿠가와 막부, 에도 막부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을 꺾고, 1603년 쇼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에도 막부는 1867년까지 260여 년 이어졌다.

Collection of The City of Gifu Museum of History · Public domain · 원본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받드는 다섯 다이로(5대로) 가운데 가장 힘이 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쥐려 했다. 이에 맞선 이시다 미쓰나리가 서쪽 다이묘를 모아(서군) 1600년 미노의 세키가하라에서 이에야스의 동군과 맞붙었다. 서군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싸움 도중 동군으로 돌아서면서 하루 만에 동군이 이겼다. 임진왜란 때 선봉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서군에 섰다가 처형되었다.
1603년 이에야스는 정이대장군(쇼군)에 올라 에도(오늘 도쿄)에 막부를 열었다. 1605년 쇼군 자리를 아들 히데타다에게 물려주어 도쿠가와 집안이 대대로 잇는다는 것을 보였고, 1614~1615년 오사카 전투로 도요토미 집안을 없앴다. 이후 에도 막부는 1867년 대정봉환까지 260여 년 동안 큰 전쟁 없는 평화를 이어 갔다.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국교 회복에 나섰다. 그가 임진왜란에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 조선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던 까닭의 하나였다. 조선은 1604년 사명대사 유정을 보내 일본의 사정을 살폈고, 1607년 사절을 보내 국교를 되살렸으며, 1609년 쓰시마와 기유약조를 맺어 부산 왜관의 교역을 다시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