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2년 4월 13일 – 1598년 11월 19일(음력)

임진왜란

다른 이름: 임진 전쟁, 조일 전쟁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졌다.

동래부순절도 — 1592년 동래성 전투, 1760년 변박 그림
동래부순절도 — 1592년 동래성 전투, 1760년 변박 그림

변박 (卞璞) · Public domain · 원본

전국 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이묘들의 힘을 바깥으로 돌리고 대륙으로 세력을 넓히려 했다. 그는 명나라를 칠 테니 조선이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정명가도(征明假道)라 한다. 1590–1591년 통신사에게 보낸 국서에는 조선이 명 정벌에 앞장서라(정명향도, 征明嚮導)고 적었고, 쓰시마의 소 요시토시가 이를 길만 빌려 달라(가도입명, 假道入明)는 말로 누그러뜨려 전했다. 명을 섬기던 조선은 이것이 침략의 구실임을 알고 거절했고, 히데요시는 이를 빌미로 군대를 보냈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부산진성이 하루 만에 무너졌고, 동래성 앞에서 일본군이 "싸우려면 싸우고 아니면 길을 빌려 달라"고 하자 동래 부사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전사이 가도난, 戰死易 假道難)"며 맞서다 전사했다. 일본군은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고, 선조는 의주까지 피란하며 명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옥포·한산도 등에서 잇달아 이겨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었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1593년 1월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되찾자 일본군은 남해안으로 물러났고, 강화 협상이 이어졌다.

협상이 깨지자 일본은 1597년 다시 쳐들어왔다(정유재란). 이순신은 명량에서 13척으로 일본 수군을 막아 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은 철수했고, 이순신은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지도에서 보기

159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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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피침국 — 선조
일본 · 침략국
명 · 원군 — 만력제
관련 장소
부산진성, 한양, 평양성, 한산도 앞바다, 명량 (울돌목), 노량 앞바다

관련 인물

  • 선조1552년 – 1608년

    군주 · 조선 제14대 왕. 의주까지 피란하며 명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년 – 1598년

    주도자 ·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 침략을 일으켰다

  • 이순신1545년 – 1598년

    지휘관 · 조선 수군을 이끈 장수. 옥포·한산도·명량에서 이겼다

  • 류성룡1542년 – 1607년

    참여자 · 서애. 임진왜란 때 영의정·도체찰사로 전쟁을 이끌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징비록을 지었다

  • 신립1546년 – 1592년

    지휘관 · 임진왜란 초 삼도 순변사로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패해 전사한 장수

  • 휴정1520년 – 1604년

    의병장 · 서산대사. 임진왜란 때 팔도 도총섭으로 전국의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 탈환에 함께했다

  • 유정1544년 – 1610년

    의병장 · 사명대사. 휴정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고, 전쟁 뒤 일본에 가서 포로를 데려왔다

하위 사건 29건

  1. 1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일본군 제1번대가 부산에 상륙해 부산진성을 하루 만에 함락했다. 첨사 정발이 성을 지키다 전사했다.

  2. 2

    부산진을 무너뜨린 일본군이 이튿날 동래성을 에워쌌다. 부사 송상현은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며 맞서다 전사했다.

  3. 3

    전쟁이 시작되고 열흘쯤 뒤 곽재우가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잇달아 일어났다.

  4. 4

    순변사 이일이 급히 모은 군사로 상주 북천에서 일본군을 맞았으나 조총에 무너졌다. 이일은 홀로 달아나 충주의 신립에게 갔다.

  5. 5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섰으나 크게 져 전사했다. 충주가 무너지자 선조는 한양을 떠나 피란했다.

  6. 6

    충주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선조가 4월 30일 새벽 비 오는 한양을 떠났다. 개성·평양을 거쳐 압록강 가 의주까지 올라가 명에 원군을 청했다.

  7. 7

    부산에 오른 지 20일 만에 일본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5월 2일 동대문으로, 가토 기요마사가 3일 남대문으로 들어왔다.

  8. 8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이 거제 옥포에서 일본 수군을 처음으로 크게 이겼다.

  9. 9

    이순신의 함대가 사천에서 일본 배 13척을 깨뜨렸다. 거북선이 처음 싸움에 나섰고, 이순신은 어깨에 총탄을 맞았다.

  10. 10

    선조가 떠난 뒤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이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에 들어왔다. 고니시는 이듬해 1월까지 평양에 머물렀다.

  11. 11

    전라도 전주를 노린 일본군을 웅치와 이치 두 고개에서 막아 냈다. 곡창 호남이 지켜져 조선은 전쟁을 이어 갈 힘을 얻었다.

  12. 12

    이순신이 견내량의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학익진으로 크게 이겼다. 일본군의 서해 보급로가 막혔다.

  13. 13

    고경명의 의병(7월)과 조헌·영규의 의병·승병(8월)이 잇달아 금산의 일본군을 쳤다가 모두 전사했다. 조헌과 함께 죽은 700명은 칠백의총에 묻혔다.

  14. 14

    조선의 요청에 명이 군사를 보냈다. 7월 조승훈의 첫 원군은 평양에서 졌고, 심유경이 시간을 버는 사이 12월 이여송이 4만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15. 15

    이순신이 일본군의 본거지 부산포를 쳐들어가 정박한 배 100여 척을 깨뜨렸다. 녹도 만호 정운이 전사했다.

  16. 16

    진주 목사 김시민이 3천여 명으로 일본군 2만여 명의 공격을 엿새 동안 막아 냈다. 김시민은 이때 입은 상처로 숨졌다.

  17. 17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 원군과 조선군이 평양성을 되찾았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은 남쪽으로 물러났다.

  18. 18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3만 명이 넘는 일본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백성들도 돌을 날라 싸움을 도왔다.

  19. 19
    1593년 – 1596년강화 교섭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3년 넘게 강화를 꾸몄으나, 서로 속인 조건이 드러나 1596년 깨졌다. 이듬해 일본이 다시 쳐들어왔다(정유재란).

  20. 20

    평양을 잃고 벽제관·행주에서 막힌 일본군이 강화 교섭에 따라 한양에서 물러났다. 4월 20일 명군과 조선군이 1년 만에 한양에 들어왔다.

  21. 21

    전년의 진주대첩을 갚으려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군 9만여 명이 진주성을 에워쌌다. 9일 만에 성이 무너지고 성 안의 군사와 백성 6만여 명이 죽었다.

  22. 22
    1597년 – 1598년정유재란

    강화 협상이 깨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군대를 보냈다. 이듬해 히데요시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23. 23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이 거제 칠천량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을 받아 거의 전멸했다. 원균도 이때 전사했다.

  24. 24

    정유재란 때 일본군 5만여 명이 전라도로 들어와 남원성을 에워쌌다. 명군과 조선군이 지켰으나 나흘 만에 무너지고 군사와 백성 1만여 명이 죽었다.

  25. 25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로 올라온 일본군을 명군이 직산 소사평에서 막았다. 일본군은 한양으로 가는 길을 접고 남쪽으로 물러났다.

  26. 26

    다시 수군을 맡은 이순신이 남은 13척으로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일본 수군 130여 척을 물리쳤다.

  27. 27
    1597년 – 1598년울산성 전투

    조명 연합군 5만여 명이 가토 기요마사가 쌓던 울산왜성(도산성)을 에워쌌다. 성 안은 물과 먹을 것이 떨어졌지만, 일본 원군이 오자 연합군이 물러났다.

  28. 28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시미성에서 죽었다. 일본은 죽음을 숨긴 채 조선의 일본군에 철수를 명했고, 물러나는 길목에서 노량 해전이 벌어졌다.

  29. 29

    물러나는 일본 수군을 조선·명 연합 수군이 노량에서 막아 크게 이겼다. 이순신은 이 싸움에서 전사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92년 난중일기
이후 사건
1593년 훈련도감 설치

관련 작품

  • 영화: 명량각색영화 · 2014 · 김한민
  • 영화: 한산: 용의 출현각색영화 · 2022 · 김한민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각색영화 · 2023 · 김한민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각색드라마 · 2004 · 이성주·김정규 · KBS 1TV
  • 드라마: 징비록각색드라마 · 2015 · 김상휘·김영조 · KBS 1TV
  • 드라마: 임진왜란 1592각색드라마 · 2016 · 김한솔·박성주 · KBS 1TV
  •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제46회 「명량 대첩의 비밀, 13척이 어떻게 333척을 이겼나?」다큐멘터리 · 1999 · KBS 1TV
  • 책: 칼의 노래각색책 · 2001 · 김훈 · 생각의나무
  • 책: 난중일기책 · 2010 · 이순신 (노승석 옮김) · 민음사
  • 책: 징비록책 · 2013 · 류성룡 (김시덕 옮김) · 아카넷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19회 「1597년, 이순신은 왜 죽음을 생각했나?」방송 · 2022 · 이민웅 · tvN STORY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57회 「1592 임진왜란! 승려 사명대사는 왜 칼을 뽑았나?」방송 · 2023 · 김용태 · tvN STORY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94회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은 어떻게 이순신의 바다가 되었나」방송 · 2024 · tvN STORY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임진왜란1592년 – 1598년

    일본의 침략부터 노량해전까지 — 육지의 의병과 바다의 이순신, 명의 참전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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