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자오런 암살과 제2혁명
다른 이름: 송교인 암살, 제2혁명, 2차 혁명, 선후 대차관
1913년 3월 20일 첫 국회 선거에서 이긴 국민당의 쑹자오런이 상하이역에서 총에 맞아 이틀 뒤 숨졌다. 위안스카이가 국회 동의 없이 외국 차관을 들여오자 7월 쑨원 등이 제2혁명을 일으켰으나 두 달 만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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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8월 쑹자오런은 동맹회를 중심으로 국민당을 만들었고, 그해 말부터 치른 첫 국회 선거에서 국민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다. 쑹자오런은 국회가 내각을 만드는 내각 책임제로 대총통의 힘을 묶으려 했다. 1913년 3월 20일 베이징으로 가려던 그는 상하이역에서 총에 맞아 22일 서른 살로 숨졌다. 수사 결과 위안스카이 정부의 국무총리 쪽으로 줄이 닿았다.
4월 위안스카이는 국회의 동의 없이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일본의 5개국 은행단에서 2,500만 파운드를 빌렸다(선후 대차관). 소금세를 담보로 잡히고 외국인이 그 징수를 감독하는 조건이었다. 이 돈으로 군대를 키운 위안스카이가 국민당 쪽 도독들을 갈아 치우자, 7월 장시의 리례쥔을 시작으로 남쪽 여러 성이 독립을 선언했다(제2혁명).
북양군은 9월 1일 난징을 차지해 두 달 만에 봉기를 눌렀고, 쑨원과 황싱은 다시 일본으로 망명했다. 10월 정식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는 11월 국민당을 해산하고 이듬해 국회마저 없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