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15년 12월 25일 – 1916년 6월 6일

호국 전쟁

다른 이름: 호국 운동, 홍헌 제제, 중화 제국, 제3혁명

1915년 12월 위안스카이가 황제 자리에 오르겠다고 하자, 25일 차이어 등이 윈난에서 호국군을 일으켰다. 남쪽 성들이 잇달아 독립을 선언하자 위안스카이는 83일 만에 제제를 거두었고, 1916년 6월 6일 병으로 죽었다.

윈난에서 호국군을 일으킨 차이어(가운데)와 장수들 — 1916년
윈난에서 호국군을 일으킨 차이어(가운데)와 장수들 — 1916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국회를 없앤 위안스카이는 1915년 여름부터 측근을 시켜 「공화제는 중국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을 만들고, 각 성 대표를 모아 그를 황제로 추대하게 했다. 12월 12일 그는 추대를 받아들이고, 이듬해를 홍헌 원년, 나라 이름을 중화 제국으로 하겠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감시를 받던 차이어는 몰래 일본을 거쳐 윈난으로 돌아가, 12월 25일 탕지야오 등과 함께 독립을 선언하고 호국군을 일으켰다. 호국군이 쓰촨으로 나아가는 사이 구이저우·광시·광둥·저장이 독립을 선언했고, 위안스카이의 북양군 장군들도 등을 돌렸다. 일본과 열강도 제제를 반대했다.

1916년 3월 22일 위안스카이는 황제가 되겠다는 뜻을 거두었다. 1월 1일부터 헤아려 83일 만이었다. 그러나 남쪽의 성들은 그가 대총통에서도 물러나라고 했고, 6월 6일 그는 요독증으로 숨졌다. 부총통 리위안훙이 뒤를 이었으나 실권은 북양군의 장군들, 곧 군벌들에게 넘어갔다.

지도에서 보기

191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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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중화민국

관련 인물

  • 차이어1882년 – 1916년

    지휘관 · 후난 출신의 군인. 신해혁명 때 윈난에서 봉기했고, 1915년 위안스카이가 황제가 되려 하자 윈난으로 빠져나가 호국군을 일으켰다

  • 위안스카이1859년 – 1916년

    군주 · 청 말의 북양군 실력자로, 임오군란 뒤 조선에 머물며 내정에 간섭했다. 신해혁명 때 청 황제를 퇴위시키고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었으나 독재 끝에 황제가 되려다 실패했다

  • 리위안훙1864년 – 1928년

    관련자 · 후베이 신군의 협통(여단장). 1911년 우창 봉기 뒤 혁명군에 떠밀려 후베이 군정부 도독이 되었고, 뒤에 중화민국 부총통·대총통을 지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신해혁명1894년 – 1916년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