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11년 10월 10일

우창 봉기

다른 이름: 무창 기의, 쌍십절, 무창 봉기

1911년 10월 10일 밤 우창의 신군 공병대가 봉기해 이튿날 성을 차지하고, 여단장 리위안훙을 도독으로 세워 후베이 군정부를 열었다. 신해혁명의 시작이다.

봉기 뒤 우창에 들어선 후베이 군정부 — 앞에 혁명군의 18성 깃발이 걸렸다, 1911년
봉기 뒤 우창에 들어선 후베이 군정부 — 앞에 혁명군의 18성 깃발이 걸렸다,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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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의 신군 안에는 문학사·공진회 같은 혁명 단체의 회원이 수천 명 있었다. 10월 9일 한커우 러시아 조계의 비밀 거처에서 폭탄을 만들다 터지는 사고가 나, 혁명 단체의 명단과 깃발이 청 관헌의 손에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셋이 처형되고 체포가 이어지자, 더 기다릴 수 없게 된 공병 제8영이 그날 밤 먼저 총을 들었다.

봉기한 병사들은 무기고를 차지하고 후광 총독 관아를 공격했고, 총독 루이청은 성벽에 구멍을 내고 달아났다. 11일 아침 우창은 혁명군의 손에 들어왔다. 이름 있는 지도자가 없던 병사들은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여단장 리위안훙을 끌어내 도독으로 세우고, 국호를 「중화민국」이라 했다. 12일까지 한양과 한커우도 차지했다.

지도에서 보기

191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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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선통제
관련 장소
우창, 한커우

관련 인물

  • 리위안훙1864년 – 1928년

    핵심 인물 · 후베이 신군의 협통(여단장). 1911년 우창 봉기 뒤 혁명군에 떠밀려 후베이 군정부 도독이 되었고, 뒤에 중화민국 부총통·대총통을 지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11년 양샤 전투

이 사건이 든 테마

  • 신해혁명1894년 – 1916년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