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리위안훙
다른 이름: 여원홍, 黎元洪
후베이 신군의 협통(여단장). 1911년 우창 봉기 뒤 혁명군에 떠밀려 후베이 군정부 도독이 되었고, 뒤에 중화민국 부총통·대총통을 지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다른 이름: 여원홍, 黎元洪
후베이 신군의 협통(여단장). 1911년 우창 봉기 뒤 혁명군에 떠밀려 후베이 군정부 도독이 되었고, 뒤에 중화민국 부총통·대총통을 지냈다
1911년 10월 10일 밤 우창의 신군 공병대가 봉기해 이튿날 성을 차지하고, 여단장 리위안훙을 도독으로 세워 후베이 군정부를 열었다. 신해혁명의 시작이다.
1911년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청이 다시 불러낸 위안스카이의 북양군이 한커우와 한양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사이 남쪽과 서쪽의 성들이 잇달아 청에서 떨어져 나갔고, 12월 2일 혁명군이 난징을 차지했다.
1915년 12월 위안스카이가 황제 자리에 오르겠다고 하자, 25일 차이어 등이 윈난에서 호국군을 일으켰다. 남쪽 성들이 잇달아 독립을 선언하자 위안스카이는 83일 만에 제제를 거두었고, 1916년 6월 6일 병으로 죽었다.

청 말의 북양군 실력자로, 임오군란 뒤 조선에 머물며 내정에 간섭했다. 신해혁명 때 청 황제를 퇴위시키고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었으나 독재 끝에 황제가 되려다 실패했다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