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고흥
백제 근초고왕 때의 박사. 백제의 역사서 『서기』를 엮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는 옛 기록을 끌어, 백제는 나라를 연 뒤로 문자로 일을 적은 적이 없었는데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가 있게 되었다고 적었다. 책은 전하지 않으며, "서기"를 책 이름으로 볼지 글로 적은 기록이라는 뜻으로 볼지 견해가 갈린다. 마한을 아우르고 부자 상속을 굳힌 근초고왕의 왕권 강화와 함께 이해한다.
백제 근초고왕 때의 박사. 백제의 역사서 『서기』를 엮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는 옛 기록을 끌어, 백제는 나라를 연 뒤로 문자로 일을 적은 적이 없었는데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가 있게 되었다고 적었다. 책은 전하지 않으며, "서기"를 책 이름으로 볼지 글로 적은 기록이라는 뜻으로 볼지 견해가 갈린다. 마한을 아우르고 부자 상속을 굳힌 근초고왕의 왕권 강화와 함께 이해한다.
근초고왕이 마한을 통합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백제의 전성기를 열었다. 바닷길로 동진·왜와 활발히 교류했다.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백제의 역사를 적은 "서기"를 엮었다고 전한다.
서기·국사·신집에서 조선상고사까지 — 왕권의 과시, 유교 사관, 자주 의식, 민족주의 사학으로 이어진 역사 쓰기
칠지도에서 나전 칠기까지 — 삼국의 금관·향로·보검, 통일 신라의 범종, 고려의 은입사와 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