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610년 – 1680년
허적
남인의 영의정.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해 널리 쓰게 했다. 경신환국 때 쫓겨나 사약을 받았다
현종 때 갑인예송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영의정이 되었다. 1678년 상평통보를 다시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켰다. 1680년 왕실의 기름 천막(유악)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쓴 일과 서자 허견의 역모 사건이 겹쳐 남인이 몰락한 경신환국 때 사약을 받았다.
남인의 영의정.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해 널리 쓰게 했다. 경신환국 때 쫓겨나 사약을 받았다
현종 때 갑인예송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영의정이 되었다. 1678년 상평통보를 다시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켰다. 1680년 왕실의 기름 천막(유악)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쓴 일과 서자 허견의 역모 사건이 겹쳐 남인이 몰락한 경신환국 때 사약을 받았다.
숙종이 허적 등의 건의로 상평통보를 나라의 법화로 정하고 널리 주조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전국에서 쓰였다.
숙종이 집권 붕당을 한꺼번에 갈아 치우는 환국을 세 차례 일으켰다(경신·기사·갑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건원중보에서 화폐 정리 사업까지 — 쌀과 베의 경제에 동전이 자리 잡기까지, 그리고 화폐 주권을 잃기까지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