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역사
건원중보에서 화폐 정리 사업까지 — 쌀과 베의 경제에 동전이 자리 잡기까지, 그리고 화폐 주권을 잃기까지

Donald Trung Quoc Don · CC BY-SA 4.0 · 원본
건원중보에서 화폐 정리 사업까지 — 쌀과 베의 경제에 동전이 자리 잡기까지, 그리고 화폐 주권을 잃기까지

Donald Trung Quoc Don · CC BY-SA 4.0 · 원본
| 화폐 | 시기·왕 | 특징 | 결과 |
|---|---|---|---|
| 건원중보 | 고려 성종 996 | 최초의 철전, 뒷면 "동국" | 널리 쓰이지 못함 |
| 활구(은병)·해동통보 | 숙종 1101·1102 | 주전도감(의천 건의), 은병은 지형 본뜸 | 귀족·관청 위주, 민간은 곡식·베 |
| 저화 | 조선 태종 1401 | 닥나무 종이 화폐, 사섬서 | 쌀·베에 밀려 값 떨어짐 |
| 조선통보 | 세종 1423 | 동전, 저화와 함께 사용 | 널리 쓰이지 못함 |
| 상평통보 | 인조 1633 → 숙종 1678 법화 | 전국 유통, 세금·소작료도 동전 | 전황, 이익의 폐전론 |
| 당백전 | 흥선 대원군 1866 | 상평통보 100배 명목 | 물가 폭등, 이듬해 중단 |
| 전환국 — 당오전·백동화 | 1883 설치 ~ 1904 | 당오전(1883), 백동화 남발 | 화폐 가치 하락 |
| 화폐 정리 사업 | 1905 메가타 | 백동화 → 제일은행권, 갑·을·병 차등 | 한국 상인 몰락, 금융 예속 |
성종 때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라가 만든 금속 화폐인 철전 건원중보를 만들었다.
의천의 건의로 숙종이 주전도감을 두고 은병(활구)과 해동통보 등 동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급자족 경제라 널리 쓰이지 않았다.
태종이 사섬서를 두고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 화폐인 저화를 만들어 쓰게 했다.
세종이 저화와 함께 쓸 동전 조선통보를 만들게 했으나, 쌀과 베에 밀려 널리 쓰이지 못했다.
숙종이 허적 등의 건의로 상평통보를 나라의 법화로 정하고 널리 주조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전국에서 쓰였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고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로 쓰게 한 당백전을 찍어 물가가 크게 올랐다.
조선 정부가 화폐를 찍는 관청 전환국을 두고 당오전을 발행했다. 뒤에 이곳에서 찍은 백동화가 남발되어 화폐 정리 사업의 구실이 되었다.
재정 고문 메가타가 대한제국의 백동화와 상평통보를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바꾸게 했다. 한국 상인과 민족 은행이 큰 타격을 입고 한국의 재정이 일본에 묶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