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의 변천
빗살무늬 토기에서 청화 백자까지 — 토기, 고려 순청자와 상감 청자, 분청사기, 백자, 청화 백자

빗살무늬 토기에서 청화 백자까지 — 토기, 고려 순청자와 상감 청자, 분청사기, 백자, 청화 백자

| 도자기 | 시대 | 특징 |
|---|---|---|
| 빗살무늬 토기 | 신석기 | 바닥이 뾰족한 토기, 음식 저장·조리, 농경의 시작 |
|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등) | 청동기 | 무늬 없는 토기, 미송리식 토기는 고조선 문화권 |
| 신라 토기·토우 장식 항아리 | 삼국 5–6세기 | 높은 온도의 회청색 경질 토기, 굽다리 접시, 토우 |
| 기마 인물형 토기 | 신라 6세기 (금령총) | 말 탄 사람 모양 주전자, 신라의 말갖춤 |
| 순청자 (참외 모양 병 등) | 고려 11–12세기 전반 | 송 청자의 영향, 비색, 상형 청자 |
| 상감 청자 (운학문 매병 등) | 고려 12세기 중엽~ | 파낸 자리에 흰 흙·붉은 흙을 메우는 고려 고유의 상감 기법 |
| 분청사기 | 고려 말–조선 15세기 | 회색 그릇에 흰 흙 분장, 인화·박지·귀얄, 소박·자유 |
| 백자 (순백자·달항아리) | 조선 15–16세기~ | 사대부의 검소한 취향, 광주 분원 관요, 17세기 철화 |
| 청화 백자 | 조선 15세기 시작, 18세기 유행 | 코발트(회회청) 안료, 문방구·생활 그릇으로 확산 |
기원전 8000년 무렵부터 간석기와 토기를 쓰고, 농경을 시작해 강가·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했다.
기원전 2000~1500년 무렵 청동기가 쓰이기 시작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사유 재산과 계급이 생겨 군장이 다스리는 사회가 나타났다.
높은 가마에서 단단하게 구운 회청색 토기. 굽다리 접시·긴 목 항아리가 많고, 사람·동물 모양의 작은 흙 인형(토우)을 붙이기도 했다.
경주 금령총에서 나온 말 탄 사람 모양의 신라 토기 한 쌍. 술이나 물을 따르는 그릇으로, 신라의 말갖춤과 옷차림을 보여 준다.
고려는 11세기에 송 청자의 영향을 받아 맑은 푸른빛의 순청자를 구웠다. 12세기 전반에 "비색"이라 불릴 만큼 절정에 이르렀다.
고려는 11세기에 맑은 비색의 순청자를 구웠고, 12세기 중엽에는 무늬를 파낸 자리에 흰 흙·붉은 흙을 메워 굽는 독창적인 상감 청자를 만들었다.
회색 흙에 흰 흙(백토)을 바르고 유약을 입혀 구운 자기. 고려 말 상감 청자에서 나와 15세기에 유행했고, 소박하고 자유로운 멋이 특징이다.
흰 흙으로 빚어 높은 온도에서 구운 깨끗한 흰 자기. 검소함과 깨끗함을 중시한 사대부의 취향에 맞아 16세기부터 조선 도자기의 중심이 되었다.
흰 백자에 푸른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려 구운 자기. 15세기에는 귀한 수입 안료로 왕실이 썼고, 18세기 이후 널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