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71년 8월 29일

폐번치현과 메이지 정부의 개혁

다른 이름: 폐번치현, 판적봉환, 식산흥업, 문명개화

메이지 정부가 번을 없애고 현을 두어 중앙 집권 국가를 세웠다. 이어 신분제 폐지·징병령·지조 개정·학제와 식산흥업으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밀어붙였다.

폐번치현 뒤 부·현으로 나뉜 1872년의 일본 (1935년 간행 지도)
폐번치현 뒤 부·현으로 나뉜 1872년의 일본 (1935년 간행 지도)

Yoshida Togo (1860-1932) et al · Public domain · 원본

왕정복고로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정부는 1869년 다이묘들에게 영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돌려주게 했고(판적봉환), 1871년 8월 29일 번을 모두 없애고 중앙에서 지사를 보내는 부·현을 두었다(폐번치현). 이로써 막번 체제가 끝나고 중앙 집권 국가가 섰다.

사농공상의 신분 차별을 없애 사민평등을 내세우고, 1872년 학제를 반포했으며, 1873년 징병령으로 국민 개병의 근대 군대를 만들고, 지조 개정으로 땅값의 3%를 돈으로 내게 해 재정을 다졌다. 철도와 전신을 놓고 도미오카 제사장 같은 관영 공장을 세우는 식산흥업,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문명개화도 함께 폈다. 특권을 잃은 사족의 불만은 세이난 전쟁으로 터졌다.

지도에서 보기

187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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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메이지 일왕
관련 장소
도쿄

관련 인물

  • 메이지 일왕1852년 – 1912년

    군주 · 일본의 122대 왕(재위 1867–1912). 그의 이름 아래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과 대일본 제국 헌법 반포가 이루어졌다

  • 오쿠보 도시미치1830년 – 1878년

    주도자 · 사쓰마 출신으로 메이지 정부를 이끈 정치가. 폐번치현과 식산흥업을 밀었고, 정한론에 반대했다

  • 사이고 다카모리1828년 – 1877년

    참여자 · 사쓰마 출신의 메이지 유신 지도자. 정한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러났고,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해 죽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사건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