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87년 2월 22일 – 5월 25일
명사회
다른 이름: 귀족의 반란
빚더미에 오른 왕정이 귀족·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매기려 명사회를 불렀으나, 특권 신분이 거부하면서 개혁이 막혔다.

7년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 지원으로 프랑스 왕정의 빚은 크게 불어나 있었다. 1786년 재정 총감 칼론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토지에 세금을 매기는 개혁안을 마련하고, 고등 법원을 거치지 않으려고 왕이 고른 귀족·성직자·고위 관리 144명의 명사회를 불렀다. 명사회는 1787년 2월 22일 베르사유 므뉘플레지르관에서 열렸다.
그러나 명사들은 특권을 내놓지 않았고 개혁은 삼부회만이 승인할 수 있다고 맞섰다. 루이 16세는 4월 칼론을 해임하고 브리엔을 앉혔지만 명사회는 5월 25일 아무 성과 없이 해산되었다. 고등 법원과의 싸움 끝에 왕정은 1788년 8월 이듬해 5월에 삼부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특권 신분이 왕정에 맞선 이 시기를 「귀족의 반란」이라고도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