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역사1787년 – 1799년24건

프랑스 혁명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

바스티유 습격, 1789년 7월 14일 — 장피에르 우엘의 수채화, 1789년, 프랑스 국립 도서관. 가운데에 붙잡힌 사령관 드 로네
바스티유 습격, 1789년 7월 14일 — 장피에르 우엘의 수채화, 1789년, 프랑스 국립 도서관. 가운데에 붙잡힌 사령관 드 로네

Jean-Pierre Houël · Public domain ·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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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비교

기간정부권력끝
1789 – 1791국민 (제헌) 의회왕과 의회 — 제3 신분과 자유주의 귀족1791년 헌법
1791 – 1792입법 의회 (입헌 군주제)거부권 지닌 왕, 재산 있는 남성이 뽑은 의회8월 10일 튈르리 습격
1792 – 1795국민 공회 (제1 공화정)지롱드파 → 산악파·공안 위원회(공포 정치)혁명력 3년 헌법
1795 – 1799총재 정부다섯 총재와 양원 — 바라스브뤼메르 18일 쿠데타
1799 – 1804통령 정부제1 통령 나폴레옹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지도로 보는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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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24건

  1. 1787년명사회

    빚더미에 오른 왕정이 귀족·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매기려 명사회를 불렀으나, 특권 신분이 거부하면서 개혁이 막혔다.

  2. 175년 만에 열린 삼부회에서 표결 방식을 두고 신분 사이가 갈라졌고, 제3 신분은 스스로 국민 의회를 선포했다.

  3. 회의장이 닫히자 제3 신분 대표들이 근처 실내 테니스장에 모여, 헌법을 만들 때까지 흩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4. 농촌의 봉기에 놀란 국민 의회가 밤샘 회의에서 영주의 특권과 십일조, 관직 매매를 없애기로 결의했다.

  5. 국민 의회가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선언하고, 국민 주권과 권력 분립을 내걸었다.

  6. 빵값에 성난 파리의 여성들이 베르사유로 걸어가 왕궁에 들이닥쳤고, 왕 일가를 파리 튈르리 궁전으로 데려왔다.

  7.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인 시작이다.

  8. 1789년 – 1799년프랑스 혁명

    시민 혁명으로 절대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세워졌다.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이 퍼졌다.

  9. 루이 16세 일가가 몰래 파리를 빠져나가 국경으로 달아나다 바렌에서 붙잡혔다. 왕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10. 왕의 폐위를 요구하는 청원에 모인 군중에게 국민 방위대가 발포했다. 혁명파가 입헌 왕정파와 공화파로 갈라졌다.

  11. 프랑스의 첫 성문 헌법이 입헌 군주제를 세웠다. 왕은 거부권을 지녔고, 선거권은 세금을 내는 남성에게만 주었다.

  12. 파리 민중과 지방 의용병이 튈르리 궁전을 습격해 스위스 근위대를 무찔렀다. 왕권이 정지되고 왕정이 무너졌다.

  13. 혁명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파리로 다가오던 프로이센군을 혁명군이 발미에서 막아 냈다.

  14. 남성 보통 선거로 뽑힌 국민 공회가 첫 회의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이튿날부터 「공화국 1년」으로 날을 세었다.

  15. 국민 공회가 「시민 루이 카페」에게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했고, 왕은 혁명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16. 1793년 – 1796년방데 반란

    30만 명 징집령에 맞서 프랑스 서부의 농민들이 왕과 가톨릭을 내걸고 일어났다. 진압과 보복으로 수십만이 죽었다.

  17. 지롱드파를 지지한 샤를로트 코르데가 욕조에 있던 마라를 찔러 죽였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그를 혁명의 순교자로 만들었다.

  18. 안팎의 위기 속에 공안 위원회가 「공포를 일상의 질서로」 삼아 혐의자를 잡아들였다. 1만 7천여 명이 공식 처형되었다.

  19. 콩시에르주리에 갇혀 있던 왕비가 혁명 재판소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튿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20. 로베스피에르가 무신론적 「이성 숭배」 대신 최고 존재와 영혼 불멸을 받드는 국가 축제를 열었다. 다비드가 연출했다.

  21. 자신들도 숙청될까 두려워한 의원들이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해 처형했다. 공포 정치가 끝나고 혁명은 온건한 쪽으로 돌아섰다.

  22. 1795년 – 1799년총재 정부

    혁명력 3년 헌법으로 다섯 총재와 양원제 의회가 나라를 이끌었다. 좌우의 반란과 쿠데타 속에 군대에 기대게 되었다.

  23. 영국과 인도의 길을 끊으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쳤다. 피라미드 전투에서 이겼지만 나일 해전에서 함대를 잃고 고립되었다.

  24. 이집트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시에예스와 손잡고 총재 정부를 무너뜨렸다. 통령 정부가 서고, 그가 제1 통령이 되었다.

주요 인물

  • 루이 16세1754년 – 1793년

    프랑스 국왕. 혁명 중 처형되었다

  •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1758년 – 1794년

    자코뱅파의 지도자. 공안 위원회를 이끌며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처형되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년 – 1821년

    혁명기의 장군, 뒤에 프랑스 황제

  • 조르주 당통1759년 – 1794년

    혁명가·웅변가. 1792년 법무 장관으로 왕정 타도 뒤의 위기를 이끌었고, 공포 정치의 완화를 주장하다 1794년 처형되었다

  •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1748년 – 1836년

    성직자·정치 이론가. 「제3 신분이란 무엇인가」로 혁명의 문을 열었고, 1799년 나폴레옹과 브뤼메르 쿠데타를 꾸몄다

  • 미라보1749년 – 1791년

    귀족 출신으로 제3 신분 대표가 된 웅변가. 혁명 초 국민 의회를 이끌며 입헌 군주제를 꾀했다

  • 라파예트1757년 – 1834년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귀족. 혁명 초 파리 국민 방위대 사령관으로 인권 선언 초안을 냈으나, 1792년 나라 밖으로 달아나다 오스트리아군에 붙잡혔다

  • 마리 앙투아네트1755년 – 1793년

    루이 16세의 왕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혁명 중 바렌 도주에 실패하고 1793년 처형되었다

  • 자크루이 다비드1748년 – 1825년

    신고전주의 화가·국민 공회 의원. 「테니스코트의 서약」「마라의 죽음」을 그리고 혁명 축제를 연출했으며, 뒤에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 폴 바라스1755년 – 1829년

    국민 공회 의원·총재. 테르미도르 반동을 이끌었고 총재 정부의 실력자였으나, 브뤼메르 쿠데타로 물러났다

  • 장폴 마라1743년 – 1793년

    의사 출신 언론인·국민 공회 의원. 신문 「인민의 벗」으로 급진 혁명을 부추겼고, 1793년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되었다

  • 칼론1734년 – 1802년

    루이 16세의 재정 총감(1783 – 1787). 특권 신분에도 세금을 매기는 개혁안을 명사회에 냈다가 거부당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