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회 소집
다른 이름: 삼부회, 국민 의회 선포
175년 만에 열린 삼부회에서 표결 방식을 두고 신분 사이가 갈라졌고, 제3 신분은 스스로 국민 의회를 선포했다.

Helman, Isidore-Stanislas (1743-1806?). Graveur Monnet, Charles (1732-1819). Dessinateur du modèle · Public domain · 원본
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 므뉘플레지르관에서 성직자·귀족·평민 대표가 모이는 삼부회가 1614년 이후 처음 열렸다. 제3 신분 대표는 다른 두 신분을 합친 만큼인 약 600명이었지만, 신분별로 한 표씩 던지면 특권 신분이 늘 이길 수 있었다. 시에예스는 그해 1월 소책자 「제3 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모든 것」이라고 답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3 신분은 머릿수 표결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버텼고, 6월 17일 시에예스의 제안으로 스스로 「국민 의회」라고 선포했다. 성직자 대표 일부가 합류하면서 신분 의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