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기원전 722년 무렵

아시리아의 북이스라엘 정복

다른 이름: 사마리아 함락, 잃어버린 열 지파

기원전 722년 무렵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주민 수만 명을 먼 곳으로 끌어갔다. 북쪽 열 지파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사르곤 2세(왼쪽)와 신하 — 두르샤루킨(코르사바드) 궁전의 부조, 루브르 박물관
사르곤 2세(왼쪽)와 신하 — 두르샤루킨(코르사바드) 궁전의 부조, 루브르 박물관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솔로몬이 죽은 뒤 갈라진 두 왕국 가운데 북쪽의 이스라엘은 사마리아를 도읍으로 삼았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가 서쪽으로 뻗어 오자 이스라엘은 조공을 바치다가 이집트를 믿고 등을 돌렸다.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는 사마리아를 3년 동안 에워쌌고, 기원전 722년 무렵 성이 무너졌다.

뒤를 이은 사르곤 2세는 비문에 사마리아 사람 2만 7290명을 끌어갔다고 새겼다. 아시리아는 정복한 사람들을 서로 다른 땅으로 옮겨 사는 정책을 폈고, 사마리아에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어와 섞였다. 끌려간 북쪽 열 지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해 「잃어버린 열 지파」라는 이야기가 생겼고, 남은 사람들과 이주민의 후손은 뒤에 사마리아인이 되었다.

구약 성경 「열왕기 하권」 17장도 이 일을 적고 있어, 성경과 아시리아의 기록이 함께 확인하는 사건이다. 남쪽의 유다는 이후 130여 년을 더 버텼다.

지도에서 보기

기원전 72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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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아시리아 · 정복국
이스라엘 왕국 · 멸망
관련 장소
사마리아

관련 인물

  • 사르곤 2세기원전 705년

    군주 · 아시리아의 왕(재위 기원전 722–705).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끌어갔다고 스스로 새겼으며, 새 도읍 두르샤루킨(코르사바드)을 세웠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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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0년 헤브라이 왕국과 유대교

이 사건이 든 테마

  • 문명의 발생과 고대 제국기원전 3500년 – 기원전 486년

    큰 강 유역에서 문명이 일어나 오리엔트·인도·중국에 첫 제국이 서기까지 — 문자·법·종교·통치 방식을 견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