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의 유다 침공과 예루살렘 포위
다른 이름: 라기스 공방전, 히스기야 수로, 실로암 터널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반기를 든 유다를 쳐 라기스 등 46개 성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히스기야 왕은 많은 조공을 바쳤으나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다.

Mike Peel · CC BY-SA 4.0 · 원본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가 죽자 이집트와 손잡고 조공을 끊었다. 그는 포위에 대비해 성 밖의 기혼 샘에서 성 안 실로암 못까지 바위를 뚫어 533m 길이의 수로를 냈는데, 양쪽에서 파 들어간 일꾼들이 만난 순간을 새긴 실로암 비문이 1880년 발견되었다.
기원전 701년 산헤립은 유다로 쳐들어와 제2의 요새 라기스를 함락했고, 그 공성 장면을 니네베 궁전의 벽에 부조로 새겼다(오늘 대영 박물관). 산헤립의 각주(테일러 각주)에는 유다의 성 46개를 빼앗고 히스기야를 「새장 속의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고 적혀 있다. 히스기야는 금 30달란트 등 많은 조공을 바쳤다.
예루살렘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구약 성경 「열왕기 하권」은 하나님의 천사가 하룻밤에 아시리아 군사 18만 5천 명을 쳤다고 전하는데, 아시리아 쪽 기록에는 물러난 까닭이 적혀 있지 않다. 같은 사건을 공격한 쪽과 방어한 쪽이 각각 남긴 드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