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2년 7월 9일 – 8월 18일(음력)
금산 전투
다른 이름: 칠백의총, 700의사
고경명의 의병(7월)과 조헌·영규의 의병·승병(8월)이 잇달아 금산의 일본군을 쳤다가 모두 전사했다. 조헌과 함께 죽은 700명은 칠백의총에 묻혔다.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9–10일 관군과 함께 금산성을 쳤으나, 관군이 먼저 무너지자 아들 고인후와 함께 싸우다 죽었다.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은 공주 갑사의 승려 영규가 이끈 승병과 함께 8월 1일 청주성을 되찾았다. 이어 금산으로 가 8월 18일 수가 훨씬 많은 일본군과 맞섰고, 조헌과 영규, 의병 700명이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일본군도 크게 꺾여 곧 금산을 버리고 물러났다. 뒤에 조헌의 제자들이 흩어진 뼈를 모아 한 무덤에 묻었는데, 이것이 금산 칠백의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