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moroka · Public domain · 원본
선조
조선 제14대 왕. 의주까지 피란하며 명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사림을 대거 등용했으나, 1575년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렸고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을 떠나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란했다. 전쟁 중 훈련도감을 설치했고, 허준에게 동의보감 편찬을 명했다.

Namoroka · Public domain · 원본
조선 제14대 왕. 의주까지 피란하며 명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사림을 대거 등용했으나, 1575년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렸고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을 떠나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란했다. 전쟁 중 훈련도감을 설치했고, 허준에게 동의보감 편찬을 명했다.
이황이 열일곱 살에 즉위한 선조에게 성리학의 요점을 열 개의 그림으로 정리한 성학십도를 올렸다.
이조 전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맞서면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다. 붕당 정치의 시작이다.
이이가 성리학의 요점과 제왕의 학문을 정리한 성학집요를 선조에게 올렸다.
동인 정여립이 반역을 꾀했다는 고변으로 그가 자결하고, 서인 정철이 옥사를 맡아 동인 1천여 명이 화를 입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졌다.
충주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선조가 4월 30일 새벽 비 오는 한양을 떠났다. 개성·평양을 거쳐 압록강 가 의주까지 올라가 명에 원군을 청했다.
조선의 요청에 명이 군사를 보냈다. 7월 조승훈의 첫 원군은 평양에서 졌고, 심유경이 시간을 버는 사이 12월 이여송이 4만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임진왜란 중 류성룡의 건의로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기르는 훈련도감을 두었다.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었다.
평양을 잃고 벽제관·행주에서 막힌 일본군이 강화 교섭에 따라 한양에서 물러났다. 4월 20일 명군과 조선군이 1년 만에 한양에 들어왔다.
임진왜란 중 명과 일본의 강화 협상이 이어지던 1596년, 왕족의 서얼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에서 난을 일으켰다. 홍주성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고, 의병장 김덕령이 연루 혐의로 옥에서 죽었다.

일본의 침략부터 노량해전까지 — 육지의 의병과 바다의 이순신, 명의 참전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
9서당 10정에서 2군 6위, 5위와 진관, 5군영, 원수부까지 — 전쟁의 위기마다 새로 꾸린 군대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
고려 건국을 도운 고창 전투에서 퇴계 이황의 도산 서원까지 — 고려 목조 건축과 영남 유학의 고장
후백제의 도읍 완산주에서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 — 실록을 지켜 내고 동학 농민군이 성을 차지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