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2년 7월 8일(음력)
한산도대첩
이순신이 견내량의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학익진으로 크게 이겼다. 일본군의 서해 보급로가 막혔다.

일본은 조선 수군을 꺾으려고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의 수군을 남해로 보냈다. 와키자카의 함대 70여 척이 견내량에 머물자, 이순신은 이곳이 좁고 암초가 많아 판옥선이 싸우기 어렵다고 보았다. 1592년 7월 8일 판옥선 몇 척을 보내 싸우다 달아나는 척하여 적을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냈다.
일본 배들이 따라 나오자 조선 수군은 학의 날개처럼 반원을 그려 에워싸고 총통을 쏘아 적선 47척을 깨뜨리고 12척을 빼앗았다. 와키자카는 간신히 달아났다. 이틀 뒤에는 안골포의 일본 함대도 무찔렀다.
이 승리로 일본군은 남해에서 서해로 올라가 물자를 나르려던 계획을 접었고, 곡창 지대인 전라도를 지킬 수 있었다. 진주대첩·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힌다. 이순신은 이듬해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