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92년 7월 – 12월(음력)
명의 참전
다른 이름: 명군 파병, 명의 원군
조선의 요청에 명이 군사를 보냈다. 7월 조승훈의 첫 원군은 평양에서 졌고, 심유경이 시간을 버는 사이 12월 이여송이 4만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의주에 머문 선조는 거듭 사신을 보내 원군을 청했다. 명은 조선이 일본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의심까지 거두고, 전쟁이 요동으로 번지기 전에 조선 땅에서 막기로 했다. 7월 요동의 조승훈이 군사 수천을 이끌고 왔으나, 17일 비 오는 밤 평양성을 서둘러 치다 크게 지고 돌아갔다.
명은 심유경을 보내 고니시와 50일 동안 싸움을 멈추기로 하고, 그사이 군대를 모았다. 12월 25일 제독 이여송이 4만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고, 이듬해 1월 조선군과 함께 평양성을 되찾았다. 명군은 이 뒤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에 머물렀고, 전쟁은 동아시아 세 나라의 국제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