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94년 9월 17일

황해 해전

다른 이름: 압록강 해전, 황해 해전 (1894)

1894년 9월 17일 압록강 어귀 앞바다에서 일본 연합 함대가 북양 함대와 싸워 군함 다섯 척을 가라앉혔다. 일본은 한 척도 잃지 않고 황해의 제해권을 쥐었다.

황해 해전 — 일본 화가 고레치카의 니시키에, 1894년
황해 해전 — 일본 화가 고레치카의 니시키에, 1894년

Public domain · 원본

평양 전투에서 청군이 무너진 이튿날인 1894년 9월 17일, 압록강 어귀로 병력을 실어 나르고 돌아가던 딩루창의 북양 함대가 이토 스케유키의 일본 연합 함대와 마주쳤다.

북양 함대는 크고 두꺼운 철갑함을 가졌지만, 일본 함대는 더 빠른 배와 빨리 쏘는 대포로 북양 함대 둘레를 돌며 포탄을 퍼부었다. 다섯 시간 가까운 싸움 끝에 즈위안 등 다섯 척이 가라앉았다. 즈위안의 함장 덩스창은 적함에 부딪치려 돌진하다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딩위안과 전위안은 수백 발을 맞고도 버텼지만, 일본은 한 척도 잃지 않았다.

살아남은 북양 함대는 뤼순을 거쳐 웨이하이웨이로 물러나 다시 바다에 나서지 않았고, 일본은 황해의 바닷길을 마음대로 쓰게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89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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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승전국 — 메이지 일왕
청 · 패전국 — 광서제

관련 인물

  • 딩루창1836년 – 1895년

    지휘관 · 북양 함대의 제독. 1894년 황해 해전에서 일본 함대와 싸웠고, 1895년 웨이하이웨이에서 에워싸이자 항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청의 마지막 반세기1861년 – 1901년

    양무운동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기술을 배우려던 청이 프랑스와 일본에 거듭 지고, 열강에 땅을 쪼개 주고,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을 떠안은 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