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732년 10월

투르–푸아티에 전투

다른 이름: 투르 전투, 푸아티에 전투, 투르·푸아티에 전투

피레네산맥을 넘어 북진하던 알안달루스 총독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의 군대가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프랑크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졌다.

투르–푸아티에 전투 — 말 탄 카롤루스 마르텔과 오른쪽의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 샤를 드 스퇴벤 그림 (1837)
투르–푸아티에 전투 — 말 탄 카롤루스 마르텔과 오른쪽의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 샤를 드 스퇴벤 그림 (1837)

Charles de Steuben · Public domain · 원본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한 이슬람 세력은 남부 갈리아를 자주 습격했다. 732년 알안달루스 총독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는 아키텐 공 외드를 무찌르고 보르도를 약탈한 뒤, 부유한 생마르탱 수도원이 있는 투르를 향해 북진했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이들을 막았다. 프랑크 보병이 밀집 대형으로 버티는 가운데 알가피키가 전사하자 이슬람군은 밤사이 물러났다. 전투가 732년 10월이라는 것이 통설이나 733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싸움터의 정확한 자리도 확실하지 않다.

아랍 쪽 기록은 이 싸움을 "순교자들의 길"(발라트 앗슈하다) 전투라 부르며, 여러 원정 가운데 하나의 실패로 적었다. 이슬람군은 그 뒤에도 남프랑스를 습격했고 759년까지 나르본을 지켰다. 그러나 740년대 베르베르인의 반란과 왕조 교체로 이슬람 세계 서쪽 끝의 팽창은 사실상 멈추었다. 유럽 쪽에서는 이슬람의 서유럽 진출을 막은 싸움으로 기억되었고, 카롤루스 마르텔의 권위는 아들 피핀이 카롤링거 왕조를 여는 바탕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73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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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우마이야 왕조 · 패전국
프랑크 왕국 · 승전국

관련 인물

  •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732년

    지휘관 · 알안달루스(이슬람 지배하의 이베리아)의 총독. 732년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으로 쳐들어갔다가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전사했다

  • 카롤루스 마르텔688년 – 741년

    지휘관 · 프랑크 왕국의 궁재.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군을 물리쳤고, 그 권위가 아들 피핀의 카롤링거 왕조 개창으로 이어졌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과 비잔티움476년 – 1077년

    서로마 제국 멸망에서 카노사의 굴욕까지 — 프랑크 왕국과 교황이 이룬 서유럽 봉건 사회, 로마를 이은 비잔티움, 동서로 갈라진 교회

  • 이슬람 세계의 형성570년 – 1055년

    무함마드의 계시에서 셀주크 튀르크의 바그다드 입성까지 — 아라비아의 새 종교가 이베리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아우르는 문명을 이루고, 바닷길로 신라에까지 닿은 4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