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푸아티에 전투
다른 이름: 투르 전투, 푸아티에 전투, 투르·푸아티에 전투
피레네산맥을 넘어 북진하던 알안달루스 총독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의 군대가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프랑크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졌다.

Charles de Steuben · Public domain · 원본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한 이슬람 세력은 남부 갈리아를 자주 습격했다. 732년 알안달루스 총독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는 아키텐 공 외드를 무찌르고 보르도를 약탈한 뒤, 부유한 생마르탱 수도원이 있는 투르를 향해 북진했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이들을 막았다. 프랑크 보병이 밀집 대형으로 버티는 가운데 알가피키가 전사하자 이슬람군은 밤사이 물러났다. 전투가 732년 10월이라는 것이 통설이나 733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싸움터의 정확한 자리도 확실하지 않다.
아랍 쪽 기록은 이 싸움을 "순교자들의 길"(발라트 앗슈하다) 전투라 부르며, 여러 원정 가운데 하나의 실패로 적었다. 이슬람군은 그 뒤에도 남프랑스를 습격했고 759년까지 나르본을 지켰다. 그러나 740년대 베르베르인의 반란과 왕조 교체로 이슬람 세계 서쪽 끝의 팽창은 사실상 멈추었다. 유럽 쪽에서는 이슬람의 서유럽 진출을 막은 싸움으로 기억되었고, 카롤루스 마르텔의 권위는 아들 피핀이 카롤링거 왕조를 여는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