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792년 4월 20일(선전 포고) · 9월 20일(발미)

혁명 전쟁과 발미 전투

다른 이름: 발미 전투, 프랑스 혁명 전쟁,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라 마르세예즈

혁명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파리로 다가오던 프로이센군을 혁명군이 발미에서 막아 냈다.

발미 전투, 1792년 9월 20일 — 풍차 언덕의 켈레르만과 혁명군. 오라스 베르네, 1826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발미 전투, 1792년 9월 20일 — 풍차 언덕의 켈레르만과 혁명군. 오라스 베르네, 1826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Horace Vernet · Public domain · 원본

입법 의회는 혁명을 지키고 퍼뜨리겠다며 1792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 편에 섰다(혁명 전쟁, 1793년부터는 영국·에스파냐 등이 더해진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처음에 프랑스군은 밀렸다. 7월 의회는 「조국이 위태롭다」고 선언했고, 마르세유 의용병이 부른 노래(라 마르세예즈)가 퍼졌다. 프로이센군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은 왕 일가를 해치면 파리를 응징하겠다고 위협했다.

롱위와 베르됭을 빼앗고 파리로 향하던 프로이센군은 1792년 9월 20일 샹파뉴의 발미에서 뒤무리에와 켈레르만의 혁명군과 마주쳤다. 포격전 끝에 프로이센군이 물러났다. 사상자는 양쪽 다 수백 명에 그쳤지만, 혁명군이 처음으로 유럽의 정예 군대를 막아 낸 싸움이었다. 이튿날 국민 공회가 왕정을 폐지했다. 그 자리에 있던 괴테는 「여기서 세계사의 새 시대가 시작된다」고 썼다고 전한다.

지도에서 보기

179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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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 교전국
프로이센 왕국 · 교전국
합스부르크 군주국 · 교전국
관련 장소
발미

관련 인물

  • 뒤무리에1739년 – 1823년

    지휘관 · 혁명군 장군. 1792년 발미·제마프 전투를 이끌었으나 이듬해 오스트리아 쪽으로 넘어갔다

  • 켈레르만1735년 – 1820년

    지휘관 · 혁명군 장군. 1792년 발미 전투에서 풍차 언덕을 지켜 프로이센군을 막았다. 뒤에 나폴레옹의 원수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