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92년 9월 21일 – 22일

국민 공회와 공화국 선포

다른 이름: 국민 공회, 제1 공화정, 프랑스 제1 공화국, 왕정 폐지, 지롱드파, 산악파

남성 보통 선거로 뽑힌 국민 공회가 첫 회의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이튿날부터 「공화국 1년」으로 날을 세었다.

왕정 폐지 선포, 1792년 9월 21일 —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공화국 기념비」의 청동 부조, 레오폴 모리스, 1883년
왕정 폐지 선포, 1792년 9월 21일 —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공화국 기념비」의 청동 부조, 레오폴 모리스, 1883년

Roi Boshi · CC BY-SA 3.0 · 원본

1792년 9월 20일 국민 공회가 처음 모였고, 21일 만장일치로 왕정 폐지를 결의했다. 22일부터 공문서는 「프랑스 공화국 1년」을 썼고, 이 날은 뒤에 만든 혁명력의 첫날이 되었다. 12월 공회는 「공화국은 하나이며 나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공회 안에서는 지방의 부르주아를 대변하는 지롱드파와, 파리 민중과 가까운 산악파(자코뱅파의 로베스피에르·당통·마라)가 맞섰고, 그 사이에 평원파가 있었다. 두 파는 왕의 재판, 전쟁, 파리의 위상을 두고 다투었고, 1793년 6월 파리 민중이 공회를 에워싸 지롱드파 의원들을 쫓아내면서 산악파가 권력을 잡았다.

지도에서 보기

179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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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 수립
관련 장소
파리

관련 인물

  •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1758년 – 1794년

    참여자 · 자코뱅파의 지도자. 공안 위원회를 이끌며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처형되었다

  • 조르주 당통1759년 – 1794년

    참여자 · 혁명가·웅변가. 1792년 법무 장관으로 왕정 타도 뒤의 위기를 이끌었고, 공포 정치의 완화를 주장하다 1794년 처형되었다

  • 장폴 마라1743년 – 1793년

    참여자 · 의사 출신 언론인·국민 공회 의원. 신문 「인민의 벗」으로 급진 혁명을 부추겼고, 1793년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92년 혁명 전쟁과 발미 전투
이후 사건
1793년 루이 16세 처형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