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학살
다른 이름: 킹 스트리트 사건
보스턴에 머물던 영국군 병사들이 눈덩이와 욕설을 퍼붓는 군중에게 총을 쏘아 다섯 사람이 숨졌다.

Daniel Schwen · CC BY-SA 2.5 · 원본
1767년 타운센드법으로 다시 세금이 매겨지자 보스턴의 반발이 커졌고, 영국은 1768년 보스턴에 군대를 보내 머물게 했다. 병사와 주민의 다툼이 잦던 1770년 3월 5일 밤, 의사당(지금의 옛 주 의사당) 앞에서 보초를 둘러싼 군중이 눈덩이와 얼음을 던지자 병사들이 총을 쏘았다. 아프리카계와 원주민의 피를 이은 선원 크리스퍼스 애틱스를 비롯해 다섯 사람이 숨졌다.
새뮤얼 애덤스와 은세공인 폴 리비어는 이를 "학살"이라 부르며 판화와 글로 퍼뜨렸다. 그러나 재판에서 병사들을 변호한 사람은 뒤에 독립을 이끈 존 애덤스였고, 여섯은 무죄, 둘은 과실 치사로 가벼운 벌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은 차를 뺀 타운센드 세금을 거두어 한동안 잠잠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