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70년 3월 5일

보스턴 학살

다른 이름: 킹 스트리트 사건

보스턴에 머물던 영국군 병사들이 눈덩이와 욕설을 퍼붓는 군중에게 총을 쏘아 다섯 사람이 숨졌다.

보스턴 옛 주 의사당 — 1770년 3월 5일 이 건물 앞에서 영국군이 군중에게 총을 쏘았다
보스턴 옛 주 의사당 — 1770년 3월 5일 이 건물 앞에서 영국군이 군중에게 총을 쏘았다

Daniel Schwen · CC BY-SA 2.5 · 원본

1767년 타운센드법으로 다시 세금이 매겨지자 보스턴의 반발이 커졌고, 영국은 1768년 보스턴에 군대를 보내 머물게 했다. 병사와 주민의 다툼이 잦던 1770년 3월 5일 밤, 의사당(지금의 옛 주 의사당) 앞에서 보초를 둘러싼 군중이 눈덩이와 얼음을 던지자 병사들이 총을 쏘았다. 아프리카계와 원주민의 피를 이은 선원 크리스퍼스 애틱스를 비롯해 다섯 사람이 숨졌다.

새뮤얼 애덤스와 은세공인 폴 리비어는 이를 "학살"이라 부르며 판화와 글로 퍼뜨렸다. 그러나 재판에서 병사들을 변호한 사람은 뒤에 독립을 이끈 존 애덤스였고, 여섯은 무죄, 둘은 과실 치사로 가벼운 벌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은 차를 뺀 타운센드 세금을 거두어 한동안 잠잠해졌다.

지도에서 보기

177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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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영국령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
영국 · 본국
관련 장소
보스턴 옛 주 의사당, 보스턴

관련 인물

  • 새뮤얼 애덤스1722년 – 1803년

    관련자 · 보스턴의 정치가. "자유의 아들들"을 이끌며 영국의 과세에 맞선 독립 혁명의 지도자

  • 폴 리비어1735년 – 1818년

    관련자 · 보스턴의 은세공인. 1775년 4월 18일 밤 말을 달려 영국군이 온다고 알렸다

  • 존 애덤스1735년 – 1826년

    관련자 · 매사추세츠의 변호사·정치가. 대륙 회의에서 독립을 이끌었고, 파리 조약을 맺었으며, 미국 제2대 대통령(1797–1801)이 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68년 쿡의 태평양 탐험
이후 사건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미국 독립 혁명1765년 – 1789년

    인지세법에서 워싱턴의 취임까지 — 「대표 없이 과세 없다」던 13개 식민지가 영국과 8년을 싸워 독립하고, 헌법으로 새 공화국의 틀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