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 처형
다른 이름: 십자가 처형, 예수의 수난, 골고다
30년 무렵 유월절에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와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 일을 적었다.

Diego Velázquez · Public domain · 원본
복음서에 따르면 유월절 순례객으로 붐비던 예루살렘에서 예수는 성전 뜰의 장사꾼들을 내쫓는 등 성전 지도층과 부딪혔고, 밤에 붙잡혀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끄는 유대 의회(산헤드린)에서 신문을 받았고, 이튿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반역자와 노예에게 내리는 가장 수치스러운 처형이었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붙었다고 한다. 예수는 성벽 밖의 골고다에서 못 박혀 그날 오후 숨을 거두었다.
이 처형은 크리스트교 밖의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116년 무렵)에서 크리스트교도라는 이름의 뿌리인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황제 때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극형을 받았다"고 적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도 『유대 고대사』(93년 무렵)에서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썼는데, 이 대목에는 뒤에 크리스트교도가 덧붙인 구절이 섞여 있으나 처형을 적은 핵심은 원래의 것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1961년 지중해 연안의 카이사레아에서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이 나와 빌라도가 실제 인물임을 보여 주었다.
처형의 해는 빌라도의 재임(26–36년)과 복음서의 날짜를 맞추어 30년(4월 7일)이나 33년(4월 3일)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십자가 처형은 예수의 생애에서 세례와 함께 가장 확실한 사실로 꼽힌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가 골고다와 예수의 무덤이라 여긴 자리에 성묘 교회를 세웠고, 발굴 결과 그곳은 1세기에 실제로 성벽 밖의 채석장 터이자 무덤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