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279년 3월 19일 (애산 전투)

남송 멸망

다른 이름: 애산 전투, 양양 전투

원군이 양양을 함락하고 남송의 수도 임안을 항복시켰다. 1279년 애산 바다에서 남송의 마지막 함대가 무너지고, 중국 전체가 처음으로 북방 유목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원은 1268년부터 한수의 요충 양양·번성을 5년 동안 에워싸다가, 일 칸국에서 온 기술자의 회회포(투석기)로 1273년 함락했다. 1274년 바얀이 이끈 원군은 장강을 따라 내려가 1276년 수도 임안을 항복시키고 어린 황제를 사로잡았다. 남은 신하들은 어린 황족을 세워 남쪽 바다로 옮겨 다니며 버텼으나, 1279년 3월 애산(야먼)에서 함대가 무너지자 재상 육수부가 마지막 황제 조병을 업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사로잡힌 문천상은 끝내 항복하지 않고 1283년 처형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26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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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원 · 정복국 — 쿠빌라이 칸 (세조)
송 · 멸망 — 도종
관련 장소
양양 (샹양), 임안 (항저우), 애산 (야먼)

관련 인물

  • 쿠빌라이 칸 (원 세조)1215년 – 1294년

    군주 ·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이자 원의 첫 황제. 고려와 강화를 맺고 일본 원정을 일으켰다

  • 바얀1236년 – 1295년

    지휘관 · 쿠빌라이의 장수. 1274년부터 남송 원정을 이끌어 1276년 수도 임안을 항복시켰다

  • 육수부1236년 – 1279년

    참여자 · 남송의 마지막 재상. 1279년 애산 전투에서 패하자 어린 황제 조병을 업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 문천상1236년 – 1283년

    참여자 · 남송의 재상. 끝까지 원에 맞서다 사로잡혔고, 항복을 거부하며 「정기가」를 남기고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218년 강동성 전투
이후 사건
1270년 원 간섭기

이 사건이 든 테마

  • 송·명과 일본의 무사 정권960년 – 1500년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 몽골 제국의 정복1206년 – 1294년

    칭기즈 칸의 즉위부터 원의 남송 정복까지 — 고려에서 헝가리까지 유라시아를 휩쓴 몽골의 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