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간섭기
개경 환도 뒤 80여 년 동안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어 내정 간섭을 받았다. 관제가 격하되고 영토 일부를 빼앗겼으며, 친원 세력인 권문세족이 권력을 잡았다.

Chen Jianru · Public domain · 원본
고려 왕은 원의 공주와 혼인한 부마가 되었고, 왕의 시호에는 원에 충성한다는 뜻의 "충"자가 붙었다(충렬왕·충선왕 …). 관제도 낮추어 2성은 첨의부, 6부는 4사, 중추원은 밀직사로 바뀌었고, "짐"은 "고", "폐하"는 "전하", "태자"는 "세자"로 불렀다.
원은 화주에 쌍성총관부(1258), 서경에 동녕부(1270), 제주에 탐라총관부(1273)를 두어 땅을 직접 다스렸다.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뒤에 돌려받았다. 정동행성과 다루가치를 통해 내정에 간섭했고, 공녀와 매(응방)를 거두어 갔다. 고려에는 변발·호복·족두리·소주 같은 몽골풍이, 원에는 고려의 풍습(고려양)이 퍼졌다.
원과 가까운 권문세족은 도평의사사를 장악하고 음서로 관직을 이으며, 남의 땅을 빼앗아 산과 강을 경계로 할 만큼 큰 농장을 만들었다. 이에 맞서 성리학을 익힌 신진 사대부가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