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후금이 3만 군으로 쳐들어왔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했고,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인조반정 뒤 조선이 친명배금으로 돌아서고, 명 장수 모문룡이 평안도 앞바다 가도에 머물며 후금의 뒤를 위협했다. 이괄의 난에 가담했다 후금으로 달아난 무리도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구실을 주며 침입을 부추겼다.
1627년 1월 홍타이지의 명으로 아민이 이끄는 후금군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함락하고 평산까지 내려왔다. 인조는 강화도로, 소현 세자는 전주로 피란했다. 의주의 이립, 용골산성의 정봉수 등이 의병을 이끌고 맞섰다.
명과의 싸움을 앞둔 후금도 오래 머물 수 없어 화의를 서둘렀다. 3월 강화도에서 두 나라는 형제의 맹약을 맺었고(정묘약조), 후금군은 물러갔다. 조선은 명과의 관계는 끊지 않았으나, 후금의 요구로 국경에서 무역(중강 개시·회령 개시)을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