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40년 5월 31일 ~ 1786년

프로이센의 성장과 프리드리히 2세

다른 이름: 계몽 전제 군주, 계몽 절대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

1740년 즉위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슐레지엔을 차지해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키웠고, "군주는 국가 제일의 머슴"이라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편 계몽 전제 군주였다.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부는 프리드리히 2세 — 아돌프 멘첼의 그림, 1850–1852년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부는 프리드리히 2세 — 아돌프 멘첼의 그림, 1850–1852년

Adolph von Menzel · Public domain · 원본

15세기부터 호엔촐레른 가문이 다스린 브란덴부르크는 프로이센 공국을 합쳐 1701년 왕국이 되었다. "군인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융커(지주 귀족)를 장교로 삼은 강한 군대와 검소한 관료제를 길렀다.

1740년 5월 왕위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그해 겨울 오스트리아의 슐레지엔을 빼앗았다. 그는 볼테르와 사귀고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불며 책을 쓴 계몽사상의 애호가로, 고문을 없애고 종교를 관용했으며 감자 재배와 산업을 장려했다. 이처럼 계몽사상을 받아들여 위로부터 개혁하되 권력은 군주가 쥐는 정치를 계몽 전제 정치라 한다.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도 그러했다.

그러나 융커의 특권과 농노제는 그대로 두어 시민 계층의 성장이 늦었다. 같은 때 조선의 영조(재위 1724–1776)는 탕평책을 펴 붕당을 누르고 균역법(1750)으로 백성의 군역 부담을 덜었다.

지도에서 보기

174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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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로이센 왕국
관련 장소
상수시 궁전, 베를린

관련 인물

  •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1712년 – 1786년

    군주 · 프로이센의 왕(재위 1740–1786). 슐레지엔을 빼앗아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키웠고, "군주는 국가 제일의 머슴"이라 한 계몽 전제 군주다

  • 볼테르1694년 – 1778년

    관련자 ·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작가. 영국의 자유를 소개하고 교회의 불관용과 미신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83년 제2차 빈 포위

이 사건이 든 테마

  •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1517년 – 1796년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