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체제 실시
세조가 각 도의 요충지에 거진을 두고 주변 고을의 군사를 묶어 스스로 지키게 하는 진관 체제를 실시했다. 중앙군은 5위로 정비했다.
조선의 군역은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 남자가 지는 양인개병이 원칙이었고, 현직 관리와 학생은 면제되었다. 군역을 지는 사람은 정군으로 복무하거나 정군의 비용을 대는 보인이 되었다(보법, 1464). 중앙군인 5위는 궁궐과 도성을 지켰고, 지방에서는 정병이 육군·수군의 병영과 진에서 근무하는 영진군이 되었다. 서리·잡학인·신량역천인·노비 등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 유사시 동원되는 예비군인 잡색군에 편성했다.
세조는 1457년 각 도에 병영을 두고, 그 아래 요충지의 거진을 중심으로 주변 고을의 군사를 묶어 지휘하게 했다. 고을마다 스스로 지키는 지역 방어 체제여서 한 진관이 무너져도 다른 진관이 버틸 수 있었으나, 큰 적을 막기에는 병력이 흩어져 있었다.
16세기에 군포를 받고 군역을 면해 주는 방군수포가 퍼져 군사가 줄자, 을묘왜변(1555) 무렵부터 유사시 여러 고을의 군사를 한곳에 모아 중앙에서 보낸 장수가 지휘하는 제승방략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초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하자 뒤가 비는 약점이 드러났고, 류성룡의 건의로 진관 체제를 다시 세우며 속오군을 편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