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457년

진관 체제 실시

세조가 각 도의 요충지에 거진을 두고 주변 고을의 군사를 묶어 스스로 지키게 하는 진관 체제를 실시했다. 중앙군은 5위로 정비했다.

조선의 군역은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 남자가 지는 양인개병이 원칙이었고, 현직 관리와 학생은 면제되었다. 군역을 지는 사람은 정군으로 복무하거나 정군의 비용을 대는 보인이 되었다(보법, 1464). 중앙군인 5위는 궁궐과 도성을 지켰고, 지방에서는 정병이 육군·수군의 병영과 진에서 근무하는 영진군이 되었다. 서리·잡학인·신량역천인·노비 등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 유사시 동원되는 예비군인 잡색군에 편성했다.

세조는 1457년 각 도에 병영을 두고, 그 아래 요충지의 거진을 중심으로 주변 고을의 군사를 묶어 지휘하게 했다. 고을마다 스스로 지키는 지역 방어 체제여서 한 진관이 무너져도 다른 진관이 버틸 수 있었으나, 큰 적을 막기에는 병력이 흩어져 있었다.

16세기에 군포를 받고 군역을 면해 주는 방군수포가 퍼져 군사가 줄자, 을묘왜변(1555) 무렵부터 유사시 여러 고을의 군사를 한곳에 모아 중앙에서 보낸 장수가 지휘하는 제승방략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초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하자 뒤가 비는 약점이 드러났고, 류성룡의 건의로 진관 체제를 다시 세우며 속오군을 편성했다.

지도에서 보기

145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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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세조

관련 인물

  • 세조1417년 – 1468년

    군주 · 수양대군.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고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다

  • 류성룡1542년 – 1607년

    관련자 · 서애. 임진왜란 때 영의정·도체찰사로 전쟁을 이끌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징비록을 지었다

  • 신립1546년 – 1592년

    관련자 · 임진왜란 초 삼도 순변사로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패해 전사한 장수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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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사육신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군사 제도의 변천685년 – 1907년

    9서당 10정에서 2군 6위, 5위와 진관, 5군영, 원수부까지 — 전쟁의 위기마다 새로 꾸린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