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다른 이름: 유성룡, 서애
서애. 임진왜란 때 영의정·도체찰사로 전쟁을 이끌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징비록을 지었다
이황의 제자로 동인(뒤에 남인)이었다. 전쟁 전에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했다. 임진왜란 중 훈련도감을 두어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기르자고 했고, 지방군을 속오군으로 편성하고 진관 체제를 되살리자고 주장했다. 1598년 탄핵으로 물러나 고향 안동에서 전쟁의 교훈을 담은 징비록을 썼다.
다른 이름: 유성룡, 서애
서애. 임진왜란 때 영의정·도체찰사로 전쟁을 이끌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징비록을 지었다
이황의 제자로 동인(뒤에 남인)이었다. 전쟁 전에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했다. 임진왜란 중 훈련도감을 두어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기르자고 했고, 지방군을 속오군으로 편성하고 진관 체제를 되살리자고 주장했다. 1598년 탄핵으로 물러나 고향 안동에서 전쟁의 교훈을 담은 징비록을 썼다.
세조가 각 도의 요충지에 거진을 두고 주변 고을의 군사를 묶어 스스로 지키게 하는 진관 체제를 실시했다. 중앙군은 5위로 정비했다.
조선 전기에 자리 잡은 양반 씨족 마을. 풍수에 맞춘 터와 양반가·초가가 함께 남아 2010년 "한국의 역사 마을"로 세계 유산이 되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졌다.
충주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선조가 4월 30일 새벽 비 오는 한양을 떠났다. 개성·평양을 거쳐 압록강 가 의주까지 올라가 명에 원군을 청했다.
임진왜란 중 류성룡의 건의로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기르는 훈련도감을 두었다.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었다.
평양을 잃고 벽제관·행주에서 막힌 일본군이 강화 교섭에 따라 한양에서 물러났다. 4월 20일 명군과 조선군이 1년 만에 한양에 들어왔다.




일본의 침략부터 노량해전까지 — 육지의 의병과 바다의 이순신, 명의 참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
9서당 10정에서 2군 6위, 5위와 진관, 5군영, 원수부까지 — 전쟁의 위기마다 새로 꾸린 군대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
고인돌에서 남한산성까지 유네스코 세계 유산, 종묘 제례악에서 씨름까지 인류 무형 문화유산 — 어느 시대에서 왔고 언제 등재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