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쩌쉬의 아편 몰수와 후먼의 아편 처분
다른 이름: 후먼 소연, 호문 소연
1839년 흠차대신 린쩌쉬가 광저우의 외국 상관을 봉쇄해 영국 상인의 아편 2만여 상자를 넘겨받고, 후먼 바닷가에서 석회와 소금을 섞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Chinese artist · Public domain · 원본
아편을 금하느냐 거두어 세금을 매기느냐를 두고 조정의 논의가 갈리자, 도광제는 엄금을 택하고 후광 총독 린쩌쉬를 흠차대신으로 광저우에 보냈다. 1839년 3월 광저우에 온 린쩌쉬는 외국 상관(13행)을 군대로 에워싸고 아편을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6주 넘게 갇힌 끝에 영국 무역 감독관 찰스 엘리엇은 상인들에게 아편을 넘기게 하고, 그 값은 영국 정부가 갚겠다고 약속했다. 넘겨받은 아편은 2만 283상자, 1,000톤이 넘었다.
린쩌쉬는 6월 3일부터 23일 동안 후먼 바닷가에 판 구덩이에 아편을 넣고 소금물과 석회를 섞어 녹인 뒤 바다로 흘려보냈다. 그는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올려 물고기들에게 미리 피하라고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엘리엇이 약속한 아편 값은 영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구실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