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의 절대 왕정
다른 이름: 태양왕, 왕권신수설, 중상주의, 베르사유 궁전, 짐이 곧 국가다
1661년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고 상비군과 관료제, 콜베르의 중상주의로 절대 왕정을 완성했으며, 1682년 베르사유 궁전으로 궁정을 옮겼다.

Hyacinthe Rigaud · Public domain · 원본
다섯 살에 즉위한 루이 14세는 귀족들의 반란(프롱드의 난, 1648–1653)을 겪었고, 재상 마자랭이 죽은 1661년 3월부터 재상을 두지 않고 몸소 나라를 다스렸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이 그가 한 것으로 전해지며, 보쉬에는 왕의 권력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로 이를 뒷받침했다. 절대 왕정은 국왕의 명령을 따르는 관료제와 상비군을 두 기둥으로 삼았다.
재무 총감 콜베르는 나라의 부를 늘리려 보호 관세로 외국 상품을 막고, 고블랭 같은 왕립 매뉴팩처를 세우며, 동인도 회사를 만들고 운하와 도로를 닦았다. 금은을 쌓아 국력을 키우려는 이러한 중상주의는 절대 왕정의 경제 정책이었다. 1682년 5월 루이 14세는 궁정을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겨 귀족들을 곁에 두고 다스렸고, 궁정 문화는 유럽 왕실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전쟁·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같은 잇단 전쟁과 낭트 칙령 폐지(1685)는 나라 살림을 무겁게 했고, 그 빚은 뒤의 프랑스 혁명의 배경이 되었다. 같은 때 조선의 숙종(재위 1674–1720)도 환국으로 붕당을 바꿔 가며 왕권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