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과 병마용
다른 이름: 병마용, 병마용갱, 진시황릉
진시황은 열세 살에 진왕이 되자마자 여산 기슭에 자기 무덤을 짓기 시작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민이 무덤을 지키는 실물 크기의 흙 군대(병마용)를 찾아냈다.

진의 왕은 즉위하면 바로 자기 무덤을 짓기 시작했다. 기원전 246년 진왕이 된 정(뒤의 진시황)도 함양 동쪽 여산 북쪽 기슭에 능을 짓기 시작했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는 전국에서 끌어온 70만 명 넘는 죄수와 백성을 이 능과 아방궁 공사에 부렸다고 『사기』는 적었다. 사마천은 무덤 안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천장에는 해·달·별을 그렸으며, 도굴꾼을 막는 쇠뇌를 장치했다고 전한다.
1974년 봄 봉분 동쪽 1.5km 에서 우물을 파던 농민들이 흙으로 빚은 병사의 조각을 찾아냈다. 발굴 결과 갑옷을 입은 보병·궁수·전차·기병이 진법대로 늘어선 갱이 셋 나왔고, 모두 8천 구쯤으로 짐작되는 병사는 얼굴과 머리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처음에는 색이 칠해져 있었으나 공기에 닿자 빠르게 바랬다.
봉분은 아직 발굴하지 않았다. 봉분 둘레의 흙에서 수은이 많이 나와 사마천의 기록과 맞는다는 조사가 있다.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1987년 세계 유산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