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9년 1월 18일 – 1920년 1월

파리 강화 회의

다른 이름: 베르사유 체제

승전국 대표들이 파리에 모여 패전국과 맺을 강화 조약을 정했다. 윌슨·클레망소·로이드 조지가 회의를 이끌었고, 베르사유 체제가 만들어졌다.

파리 강화 회의의 "4거두" — 왼쪽부터 로이드 조지, 오를란도, 클레망소, 윌슨, 1919년 5월
파리 강화 회의의 "4거두" — 왼쪽부터 로이드 조지, 오를란도, 클레망소, 윌슨, 1919년 5월

Edward N. Jackson (US Army Signal Corps) · Public domain · 원본

1919년 1월 18일 30개 가까운 나라의 대표가 파리에 모였다. 패전국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부르지 않았다. 미국의 윌슨, 프랑스의 클레망소, 영국의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의 오를란도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윌슨은 14개조의 이상을 앞세웠으나, 클레망소는 다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엄한 조건을 요구했고, 영국과 이탈리아도 제 몫을 챙겼다.

회의는 독일(베르사유), 오스트리아(생제르맹), 불가리아(뇌이), 헝가리(트리아농), 오스만 제국(세브르)과 차례로 조약을 맺었다. 민족 자결의 원칙에 따라 동유럽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 등이 생겼으나, 패전국의 식민지와 아랍 지역은 승전국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이렇게 짜인 국제 질서를 베르사유 체제라 한다.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민족 자결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김규식이 독립 청원서를 냈으나 회의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산둥 이권이 일본에 넘어가자 중국에서는 5·4 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이 낸 인종 평등 조항도 채택되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19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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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프랑스 · 개최국
미국 · 승전국 — 대통령 우드로 윌슨
영국 · 승전국
이탈리아 · 승전국
일본 · 승전국 — 다이쇼 일왕
관련 장소
파리

관련 인물

  • 우드로 윌슨1856년 – 1924년

    외교관 · 미국 28대 대통령(1913–1921). 1917년 참전을 이끌고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민족 자결주의와 국제 연맹을 내세웠다. 1919년 노벨 평화상

  • 조르주 클레망소1841년 – 1929년

    외교관 · 프랑스 총리(1906–1909, 1917–1920). 전쟁 막바지에 나라를 이끌어 "호랑이"라 불렸고, 파리 강화 회의 의장으로 독일에 엄한 조건을 요구했다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1863년 – 1945년

    외교관 · 영국 총리(1916–1922). 재무 장관으로 사회 보험을 도입했고, 전시 내각을 이끈 뒤 파리 강화 회의에 영국 대표로 나섰다

  • 김규식1881년 – 1950년

    관련자 ·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갔다. 민족 혁명당에 참여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하위 사건 2건

  1. 1

    연합국과 독일이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맺은 강화 조약. 독일은 전쟁 책임을 지고 영토와 식민지를 잃었으며, 군비를 제한당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2. 2

    연합국이 오스트리아(생제르맹)·불가리아(뇌이)·헝가리(트리아농)와 맺은 강화 조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고 중부 유럽에 새 나라들이 생겼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98년 파쇼다 사건
이후 사건
1919년 범아프리카 회의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1908년 – 1923년

    발칸반도의 위기에서 시작해 참호전과 총력전으로 네 제국을 무너뜨린 전쟁, 그 속에서 일어나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낳은 러시아 혁명, 그리고 민족 자결과 국제 연맹을 내건 베르사유 체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