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갔다. 민족 혁명당에 참여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다. 1919년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가서 독립 청원서를 냈고, 임시 정부 외무총장·구미 위원부 위원장을 지냈다. 1935년 김원봉 등과 민족 혁명당을 만들었고, 1944년 충칭 임시 정부의 부주석이 되었다. 광복 뒤 여운형과 좌우 합작 위원회를 이끌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했고,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 의장을 지냈다. 1948년 김구와 평양에서 남북 협상에 나섰다.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