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68년 1월 5일 – 8월 21일

프라하의 봄

다른 이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걸고 언론 자유 등 개혁을 폈으나, 소련이 이끈 바르샤바 조약군이 침공해 짓밟았다.

불타는 전차 옆으로 국기를 들고 지나가는 프라하 시민들 — 1968년 8월 소련군 침공 때
불타는 전차 옆으로 국기를 들고 지나가는 프라하 시민들 — 1968년 8월 소련군 침공 때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 Public domain · 원본

1968년 1월 공산당 제1서기가 된 둡체크는 검열을 없애고 언론·집회의 자유와 경제 개혁을 약속했다. 시민들은 활발히 토론하며 개혁을 반겼다.

개혁이 동유럽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한 소련은 8월 20–21일 밤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군대 수십만 명과 전차를 보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했다. 둡체크는 모스크바로 끌려갔다가 뒤에 물러났다. 소련은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한 나라의 주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내세웠다.

지도에서 보기

1968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체코슬로바키아 · 피침국
소련 · 침공국 — 최고 지도자 브레즈네프

관련 인물

  • 알렉산데르 둡체크1921년 – 1992년

    주도자 ·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1968–1969).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걸고 프라하의 봄 개혁을 이끌었다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1906년 – 1982년

    관련자 · 소련 공산당 서기장(1964–1982).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누르고(브레즈네프 독트린), 데탕트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함께 겪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8년 뮌헨 협정

이 사건이 든 테마

  • 냉전1945년 – 1991년

    얄타 회담에서 소련 해체까지 — 미국과 소련이 이끈 두 진영이 세계를 나누어 맞선 반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