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얄타 회담에서 소련 해체까지 — 미국과 소련이 이끈 두 진영이 세계를 나누어 맞선 반세기

U.S. Army photo Photo Credit: USAMHI · Public domain · 원본
얄타 회담에서 소련 해체까지 — 미국과 소련이 이끈 두 진영이 세계를 나누어 맞선 반세기

U.S. Army photo Photo Credit: USAMHI · Public domain · 원본
루스벨트·처칠·스탈린이 크림반도 얄타에서 만나 독일의 분할 점령, 유엔 창설, 소련의 대일 참전을 합의했다. 전후 질서와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트루먼·스탈린·처칠(뒤에 애틀리)이 포츠담에서 패전 독일의 처리를 정했다. 회담 중 미·영·중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냈다.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봉쇄 정책(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고, 서유럽 부흥을 위한 대규모 원조(마셜 계획)를 내놓았다. 냉전이 본격화했다.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가는 육로와 물길을 막자, 미국과 영국이 11개월 동안 비행기로 생필품을 날랐다(베를린 공수). 이듬해 독일은 동·서로 갈라졌다.
국공 내전에서 이긴 공산당이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 갔다.
미국·캐나다와 서유럽 10개 나라가 북대서양 조약을 맺어 집단 방위 동맹을 만들었다. 소련은 1955년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 맞섰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유엔군과 중국군이 참전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그어졌다.
남북으로 나뉜 베트남에서 북베트남·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과,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이 싸웠다. 미국이 물러난 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고 베트남은 공산 정권 아래 통일되었다.
소련이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충격을 받은 미국이 항공 우주국(NASA)을 세우면서 미·소의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다.
동독이 하룻밤 사이에 동·서 베를린 사이에 철조망을 치고 장벽을 쌓았다. 베를린 장벽은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짓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이 해상 봉쇄로 맞섰다. 13일 동안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소련이 미사일을 거두면서 풀렸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걸고 언론 자유 등 개혁을 폈으나, 소련이 이끈 바르샤바 조약군이 침공해 짓밟았다.
미국 대통령 닉슨이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만나고 상하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미·중이 화해하며 냉전이 긴장 완화(데탕트)로 접어들었다.
소련이 공산 정권을 지키려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다. 미국 등이 지원한 무자헤딘의 저항 속에 10년 가까이 싸우다 1989년 물러났다. 데탕트가 끝났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을 펴고 "신사고" 외교로 미국과 군축에 나섰다.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잇달아 무너지고 냉전이 끝났다.
동독이 국경을 열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냉전 종식의 상징이 되었다.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며 41년 만에 독일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15개 공화국으로 나뉘며 해체되었다. 냉전이 끝났다.
미국 37대 대통령(1969–1974). 닉슨 독트린을 내놓고 중국을 방문해 데탕트를 이끌었으며,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났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이자 첫 대통령.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을 펴 냉전을 끝냈으나 소련 해체를 막지 못했다. 1990년 노벨 평화상
미국 육군 참모 총장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이끌었고, 국무 장관(1947–1949)으로 유럽 부흥 계획(마셜 계획)을 내놓았다. 1953년 노벨 평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