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3년 4월 20일(음력)

한양 수복

평양을 잃고 벽제관·행주에서 막힌 일본군이 강화 교섭에 따라 한양에서 물러났다. 4월 20일 명군과 조선군이 1년 만에 한양에 들어왔다.

평양성을 되찾은 이여송은 곧장 남쪽으로 내려왔으나 1월 27일 벽제관에서 일본군에 지자 개성으로 물러나 싸움을 꺼렸다. 2월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크게 이기고, 한양의 일본군은 굶주림과 돌림병에 시달렸다. 심유경과 고니시는 일본군이 한양에서 물러나는 대신 명군이 뒤를 치지 않기로 했다.

일본군은 4월 18일 한양을 떠나 남해안으로 내려갔고, 20일 명군과 조선군이 들어왔다. 도성은 불타고 굶주린 백성의 시체가 길에 쌓여 있었다고 류성룡은 적었다. 선조는 그해 10월에야 한양으로 돌아왔는데, 궁궐이 모두 불타 월산대군의 옛집을 임시 궁궐로 썼다. 이곳이 뒤의 경운궁(덕수궁)이다.

지도에서 보기

1593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교전국 — 선조
명 · 원군 — 만력제
일본 · 교전국
관련 장소
한양

관련 인물

  • 이여송1549년 – 1598년

    지휘관 · 명나라 장수. 원군을 이끌고 와 조선군과 함께 평양성을 되찾았다

  • 류성룡1542년 – 1607년

    참여자 · 서애. 임진왜란 때 영의정·도체찰사로 전쟁을 이끌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징비록을 지었다

  • 선조1552년 – 1608년

    군주 · 조선 제14대 왕. 의주까지 피란하며 명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93년 강화 교섭
이후 사건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