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93년 – 1596년 9월(음력)
강화 교섭
다른 이름: 임진왜란 강화 협상, 명일 강화 교섭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3년 넘게 강화를 꾸몄으나, 서로 속인 조건이 드러나 1596년 깨졌다. 이듬해 일본이 다시 쳐들어왔다(정유재란).
1593년 일본군이 남해안으로 물러난 뒤 전쟁은 교섭으로 넘어갔다. 히데요시는 명 황제의 딸을 일본 천황의 후비로 보낼 것, 감합 무역을 다시 열 것, 조선 8도 가운데 남쪽 4도를 넘길 것, 조선 왕자를 인질로 보낼 것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명은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고 조공을 받는 정도로 끝내려 했다. 심유경과 고니시는 서로 상대가 항복한 것처럼 꾸며 각자의 조정에 보고했다.
1596년 9월 명의 사신이 오사카성에서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에 책봉하자 거짓이 드러났다. 땅도 무역도 얻지 못한 것을 안 히데요시는 크게 노해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조선은 교섭에서 줄곧 빠져 있었고, 일본군은 그동안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머물렀다. 심유경은 뒤에 명에서 처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