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 사망과 4·5 톈안먼 사건
다른 이름: 4·5 운동, 제1차 톈안먼 사건, 1976년 톈안먼 사건, 저우언라이 사망
1976년 1월 8일 총리 저우언라이가 죽은 뒤, 청명절인 4월 4–5일 톈안먼 광장의 인민 영웅 기념비에 추모 화환과 시가 쌓였다. 당국이 화환을 치우자 군중이 항의했고, 5일 밤 민병과 경찰이 광장을 정리했다. 사건은 "반혁명 사건"으로 규정되어 덩샤오핑이 다시 실각했다.

오랫동안 총리로서 문화 대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행정을 이끌어 온 저우언라이가 1976년 1월 8일 암으로 죽었다. 추모를 줄이려는 4인방 쪽의 움직임에 반발이 쌓였고, 3월 말부터 베이징 시민들이 인민 영웅 기념비에 화환을 바치고 저우언라이를 기리며 장칭 등을 빗대어 비판하는 시를 붙였다. 난징 등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추모가 이어졌다.
4월 4일 밤 당국이 화환을 모두 치우자 5일 수많은 군중이 광장에 모여 항의했고, 차량과 건물 일부가 불탔다. 그날 밤 민병과 경찰이 광장에 남은 사람들을 몽둥이로 해산시키고 붙잡았다. 정치국은 이를 "반혁명 사건"으로 규정하고 4월 7일 그 배후로 지목된 덩샤오핑의 모든 직무를 박탈했으며, 화궈펑을 당 제1부주석 겸 총리로 세웠다. 부상자·체포자 수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마오쩌둥이 죽고 4인방이 체포된 뒤 1978년 11월 공산당은 이 사건을 "완전한 혁명적 행동"으로 다시 평가했다.